≪숨결이 바람 될 때≫
"오이디푸스는 너무 억울해요!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 거잖아요. 신을 원망해야 하지 않나요?"
≪그리스 비극 걸작선 - 오이디푸스 편≫을 읽고 독서모임 멘토에게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운명론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운명은 정말 정해져 있는 건가요?"
"...."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바이의 왕이다. 테바이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신탁 때문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속에 버려졌다. 하지만 목동에게 발견되어 살아남았고 이웃 나라의 왕자로 성장하여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테바이의 왕위에 올라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겪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피할 수 없단 말인가? 인생은 정말 정해진 걸까?
여기 운명의 사슬에 걸린 듯 한 한 남자가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이다. 그는 서른여섯, 총망 받는 신경외과 의사였다. 10년간 하루 14시간씩 이어지던 고된 수련 끝에 일류 대학병원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가족과의 평범한 휴가도 꿈꿀 수 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폐암 4기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는 꿈을 좇아, 행복을 좇아 치열하게 달려왔다. 오랫동안 잠재력을 쌓아왔다. 많은 것을 계획해 놨고 이제 곧 성사될 참이었다. 하지만 그가 꿈꿨던 미래는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의 정체성은 붕괴되었고, 그가 돌보던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에서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이런 의도치 않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을 것인가?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ll go on)
오랫동안 환자들의 죽음을 보았지만, 죽음 앞에서 그도 흔들리고 만다. 고통스러워했고 혼란스러워했다. 불확실한 미래가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는 죽음과 마주한 채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과학은 답을 줄 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문학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어느 날, 한 문장이 그에게 다가와왔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에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p179-180
그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죽음을 용감하게 마주했다. 첫 번째 암은 호전되었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요양을 하고 쉬는 대신에 다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돌아가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아내 루시와 상의 끝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을 한다. 그렇게 일상을 회복하는 듯하던 어느 날 다시 암이 재발했다.
그의 주치의 에마는 그의 정체성을 붙들어 주고 그것에 따라 살도록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에마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그는 한 가지 깨닫는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었다."라고.
이제는 의술로 사람들을 도울 수 없지만 글로 사람들을 돕기로 다짐했다.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이 책을 남겼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각자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삶에는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갑작스러운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 불행이 덮여 있는 집에 태어난 사람. 너무나 행복한 순간에 죽을병에 걸린 사람 등등. 우리는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저자가 깨달은 것처럼, 그냥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다.
톨스토이는 '삶은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간이기에, 의미가 필요하다. 그것은 각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문학에서 찾아 헤매었다. 그는 투병 중에 부모님이 믿던 기독교로 돌아갔다. 아마도 그곳에서 삶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 고통의 의미를 발견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저자에게서 용기, 사랑, 소명 의식, 삶의 태도를 배웠다. 그는 마지막까지 그가 찾은 소명에 따라서 행동했다. 나도 그렇게 용기 있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앞으로 돌아가서,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멘토에게 물어보았다.
"운명이 정해져 있든, 아니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야겠죠?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그제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걸 말이오.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때에만 우리가 가진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앞으로 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인데,
오직 그 하나를 위해 인간은 이 세상에 온 것이기 때문이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 가지 질문> -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