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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pr 28. 2020

'인생'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우리는 제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된 직업이 있다.


그 직업의 이름은 작가이며, 우리가 써 내려가고 있는 이야기의 제목은 '인생'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쓰기 시작한 한 편의 이야기는 세상을 떠날 때 마침표가 찍힌다. 


그 '인생'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작가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를 살펴본 적이 있는가?

문득 나는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흔히 이야기의 구조를 말할 때 우리는 기승전결, 혹은 3막 구조를 이야기한다. 

30대에 접어든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 나는 기승전결의 구조로 보면 승의 단계에 있고, 처음, 중간, 끝의 3막 구조로 보면 중간에 다다랐다.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는 어땠을까? 

내가 들여다본 나의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너무나도 지루한 이야기였다. 

유년 시절은 부모님의 품 안에서 자랐고, 학창 시절에는 어느 정도 학업에 매진해서 대학교를 갔으며,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취업에 나 또한 어려움을 겪다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꾸 눈에 밟히는, 그래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 이와 연애를 했다. 


만약 여러분이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읽는 독자라면 과연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싶을지 묻고 싶다.

아마 읽는 도중에 너무도 지루해서 이미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가장 큰 요소로 일컬어지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인물, 갈등, 풀롯(구조)이다.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에는 그 3가지 중 뛰어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이야기 속 주인공인 나라는 인물은 지극히 평범해서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하나도 없었다. 

외향은 다른 이들과 구분될 만큼 뛰어나지 않았고, 성격은 이런 사람이 있었나 없었나 모를 만큼 조용했다. 


내 이야기 속 갈등도 너무나 빈약했다. 

남들 다 겪는 학업의 어려움 조금, 취업의 어려움 조금, 연애의 어려움 조금...

막장이라 불리는 최근 이야기 속 폭발적인 갈등과 비교해보면 내 이야기 속 갈등은 코웃음 칠 정도의 갈등이었다.


풀롯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내 이야기 속 풀롯은 평범하게 태어난 주인공이 부모님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성장하고, 꼭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어도 하등 상관이 없는 의미 없는 일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 이야기는 적당한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었습니다로 흘러간다.


여러분들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가며 읽고 싶을까?


최악이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쓴 나의 이야기를 본 소감이었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야기, 추운 겨울이 닥치면 가장 먼저 불쏘시개가 되어 사라질 이야기였다.


그래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쓰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쓸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멋진 이야기로 다시 쓰려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거나, 시간을 되돌려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니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비록 기승전결의 기가 아니라 승 일지라도, 처음 중간 끝의 처음이 아니라 중간일지라도 이제부터라도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괜찮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다. 

물론 처음부터 멋진, 완벽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수는 없기에 역사에 길이 남는 이야기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의미 없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과 그 결과 속에서 나라는 인물이 개성을 찾을 것이고, 갈등은 증폭될 것이 눈에 보였다.


내가 원하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가는 과정에는 고집과 집념, 열정이 필요했다. 

고집과 집념, 그리고 열정은 주인공을 부각할 것이었고,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면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 보였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을 바라는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이 커질 것이고, 덩달아 내면의 나와의 갈등이 커질 것이다.

풀롯 또한 모든 게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 내 이야기도 모든 게 바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궤도를 조금 벗어나자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의 여유 있던 삶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연인과의 이별이 찾아왔고, 그 사실을 아직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못했다.

항상 휴식의 시간이었던 주말이 보통의 나날들과 같아졌다. 

아니, 더 바빠졌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행동으로 너무도 밋밋했던, 그래서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내 이야기는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도 알 수 없다.

뒤바뀔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과거의 평범했던 지금의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새롭게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이 닥치면 살아온 인생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고 한다.

나는 그 순간에 내가 볼 내 이야기들의 파노라마가 끝날 때 후련한 미소를 짓고 싶어서이다.

설사 이러한 내 결정이 내 이야기를 지금보다 엉망으로 만들지라도...


나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아니 설사 누군가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일지라도, 나는 내가 만족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난 공들여 한 줄의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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