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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보니까 보이는 소중한 마음들

by 뚜벅뚜벅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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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5박 6일 긴긴 병동시간을 보내고 퇴원을 했다. 앞으로 항암치료라는 2차 넘을 산이 남았지만 남편 말대로 일단 몸에서 악성을 다 제거했으니 남은 건 다시 뿌리내리지 못하게 관리하는 것이라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병원 밖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내 일상만 잠시 멈춘 듯 비현실적인 느낌이 닥치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치료에 확신을 갖는 남편 덕분에 정신줄을 붙잡았다. 병원 VIP 된다고 생각하자는 말에 웃기도 하고, 아픈 몸이라도 곁에 있다면 이 정도 수고는 괜찮다는 말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친정엄마는 내가 다 고쳐준다! 며 걱정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씩씩함을 보여줬다. 시부모님은 다양한 극복사례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용기의 말씀을 적어주셨고,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지인은 먼저 겪었던 투병일기를 들려주며 다 지나간다고 지금이 휴식기라며 평안함을 전파하고 갔다. 방송으로 알게 된 교수임 역시 병원문제로 고민을 털어놨을 때 적극적으로 안내를 해주시고 주치의에게 따로 연락까지 해주셨다. 교회 여집사님들은 음식과 예쁜 그릇을 선물해 주시며 잘 먹고 이기자고 공감하고 감싸주셨다. 고마운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 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가장 조심스럽게 소식을 전한 딸의 반응이 의외였다. “대충 알고 있었어 “ 내가 검색하고 메모했던 흔적들을 지운다고 지웠는데 딸의 눈에 포착됐나 보다. 검색을 해보고 혼자 좀 울었다는 딸은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흔들림이 없다.


병동에서 만난 간호사들도 참 고마운 존재들이다. 잊을만하면 약 챙겨주고, 나의 대소변에 가장 관심이 많으며 새벽 잠결에도 피를 뽑고 혈압 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 덕분에 병동이 돌아간다는 걸 느끼며 좋은 마음으로 도넛 선물을 돌렸다. (저 또 항암 하러 오니까 잘 부탁드려요) 우울하지 않는 병동생활을 하기 위한 이벤트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암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인지 암밍아웃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심각한 분위기가 읽힌다. 그래서 치료가 가능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등 궁금한 것은 많겠지만 조심스러워 묻지 못하는 상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준비가 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암 환자임을 알리고 있다. 그래서 얻는 위로가 이렇게 크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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