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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들보다 앞서 가야 하냐고?

최선이 꼭 100%를 의미할 필요는 없지.



딸이 어렸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쯤 인 것 같다.


"엄마, 왜 꼭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왜 남들보다 앞서 가야 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나?"


'왜 남들보다 앞서가야 해?'

이 말은 그 당시 내게 별거  아닌 것처럼 던져졌지만,

씹고 씹고 곱씹어도 잘 소화되지 않는 충격의 말이었다.

'앞서 가지 않으면 뒤쳐지는 건데?  최선 뒤에 차선은 없다'라는 나의 이분법적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너무나도 신선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 딸은 서른이 다 되어간다. 그 아이는 자신의 말처럼 앞서고 뒤서는 것은 안중에 없고,  그야말로 하고 싶은 대로, 부럽게도, 지 꼴리는 대로 산다.


지금 와서 어린 딸이 했던 그 말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좀 닮아보려고 한다.



돌아보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나는 늘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썼고 , 어떠한 성과나 결과를 달성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후회 없이 노력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목표를 이루는 과정과 결과 모두에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최선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을 의미했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야 했다. 실패를 했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며 괴로워했고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노력해야만 했다. 이 과정은 나를 지치 했고 소진을 불러왔다.



나이가 들고, 기력이 떨어지면서

100% 나를 갈아 넣는 것이 어렵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차선을 택하기도 하는 지금.


오히려 더 여유롭고 즐겁다.





아침 7시.

알람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분명 3시 다 돼서 잤는데

왜 피곤함이 예전보다 덜한 거 같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저녁을 먹고 치우기도 전,

8시면 자리에 누워

시체처럼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했었다.


조금이라도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근육이 딱딱해지고 등이 아팠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엄마들의 부항자국. 등에 붉고 시커먼 동그라미의 기억이 내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세계 당길수록 시원한  그 아이러니...

딸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 넌 모르겠지.

아픔이 어떻게 시원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너는 안 그럴 줄 아니? 오래 살아서 꼭 지켜볼 거야!'

소심한 나는 괜히 머슥해진 마음을,  속으로만 외쳐 본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은,

하루 5시간만 자도 크게 일과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몸의 여유까지 만들어주는 듯하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100%를 목표로 할 때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하고

차선이 되어도 불만스럽지 않은 지금.


이것이 바로 '웰빙'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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