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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Nov 06. 2019

직장상사에게서 도망쳤다.

내가 버틸 수 있는 그릇을 알아야 한다.

일한 지 햇수로 4년 차가 되던 시절 (2014년 경의 일이다) 이직을 했다.

여러 가지로 욕심이 많았던 20대의 나는 업계에서 네임밸류가 있는 이 회사를 꼭 다녀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연봉도 워라밸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 회사에 다니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판단은 하지 않고 바로 입사했다.


빨리 적응하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완전히 이곳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가 워낙 사람 간 교류가 많았던 곳이라서, 새로운 곳의 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낯설고 사람들과도 친해지기 어렵긴 했지만 이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직장상사로 인해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

1-2개월 정도 지나고 서로에 대해 파악을 했을 때쯤일까.

팀장인 그녀는 나의 어느 시점부터 나의 모든 업무 하나하나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메일에  문장부터 해서 다른 팀이 명확하지 않은 요청을 했을 , 내가 그들에게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짧은 경력이지만 그동안 그렇게  좋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을 못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어떤 회사와 제휴를 하여 마케팅을 진행하는 건이 있었는데, 상대측 회사는 우리 업계와는 워낙 다르게 보수적인 기업이다 보니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피드백이 상당히 늦고, 때로는 이쪽 업계에 대해  몰라서 하는 행동도 있기에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쉬운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측에서  번에 매끄럽게 아웃풋이 나오지 않으면 수시로 불려 가기 일쑤였다.


"야, 네가 잘했어야지? 다시 해오라 그래"


상대측에서 보내온 제안이 퀄리티가 좋지 못했을 때 내가 들었던 말이다. 나도 이 사람이랑 일하느라 힘든데,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돌아온 말들은 가슴에 너무나도 아프게 꽂혔다.


지옥 같은 회사생활의 반복 

매일 평균 하루에  3~4번 정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전체 메일로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자리에 불러가기도 하고 메신저로도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도, 희한하게 어떤 날은 날 불러서 네가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너에게 말을 좀 심하게 했던 것 같아서 미안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다음날 내가 아무렇지 않게 웃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래  미워하는  아니구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덮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면 다시  패턴은 반복되었다.


"  뭐야?  일로와!"라는 소리를 회사가 떠나가라 크게 사람들 앞에서 들은 적도 있었다.눈물이 나는 것을  참다가 몰래 울었다. 주변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두려웠다.

  못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데, 난 혹시 그런 사람이 맞는걸까? 괴로웠다.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하면 어떻게 잘못해야 매일 그 정도로 혼나고 소리까지 지르냐고 의아해하곤 했다.

정말 그렇다. 웬만큼 못하지 않고서야 매일 평균 몇 회씩 불려 가고 혼나고, 소리까지 지를 일이 얼마나 있겠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일매일 반복된 생활에 고장  자판기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출근길에 "제발 오늘은 무사히 보내게  주세요" 기도했지만 나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열등감, 자기 자학, 낮은 자존감, 푸석한 얼굴까지 점점 매력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나는 버텨내야 하니까 그녀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파트장이 생기면서부터는 직접적인 터치도 적어지고 파트장님이 굉장히 잘해주셔서 많은 부분이 나아질 기미가 보였다.

그렇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너무 상해버린 탓에, 나는 그곳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내가 버틸  있는 그릇을 안다는 

이제 생각해보면 알 것도 같다. 안 그래도 바쁘고 예민했던 와중에 그녀의 강한 스타일에 상반된 성향의 내가 하는 특정 부분이 거슬렸던 것이고, 나는 그걸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누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좋게 커뮤니케이션해도 전혀 문제없을 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주 만만하고 화풀이하기 쉬운 상대였다.


그때의 나는 나에 대해 잘 몰랐다. 어떤 부분에 내성이 약하며,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틸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모르고 무작정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무조건 버티는 것 대신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1. 이 괴로운 상황에서 내가 벗어난다. (ex: 퇴사나 조직 이동)

2. 직접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얘기해서  상황을 개선시킨다.

3 강철 탈이된다. (남의 감정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택한 방법은  상황을 피해버리는 소극적인 선택이었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길게 버티질 않길 잘했다는 생각은 한다. 동시에 나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 용기를  필요는 반드시 있었다고 본다.

당신에 의해 내가 너무 상처를 받고 있으니, 내가 좀 더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라고라도 말을 했어야 하는데, 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용기도 없고 솔직하지도 못했다.


난 그래서 이렇게 잘 벗어났고, 이렇게 변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글을 언제나 쓰고 싶지만, 나는 너무나도 느리게 가는 사람이라, 눈에 크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

여전히 용기가 없어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있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최소한 내가 크게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궁지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느리더라도,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냈으면 한다. 그래야 나도 행복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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