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Yonu Jun 12. 2024

진실

그러는 동안 민준-테일러는 술독에 빠져 지냈다. 평소 같았으면 지석-데이비드가 민준-테일러를 말렸겠지만 그도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어느 날 회관이 술렁거렸다. 재윤-제임스가 보좌진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지석-데이비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민서-맨디는 함께 오지 않았다.



재윤-제임스는 평소와는 다른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 어른아이들을 불러 모았고 그 자리에서 APAR 탈퇴를 선언했다. 향후 그 어떤 APAR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던 어른아이들은 충격에 빠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재윤-제임스는 서둘러 회관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민준-테일러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야! 재윤-제임스! 너 뭐 어른아이들과 평생 함께 할 거라며! 너는 다른 정치인들이랑 다르다며! 그래놓고 이제 우리 좆될 거 같으니까 버리냐? 어?"

얼마나 취했는지 민준-테일러는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민준-테일러의 돌발행동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민준-테일러는 더욱더 악을 질렀다.


"야! 재윤-제임스! 무섭냐? 어른아이들은 공격성이 높아서? 너도 믿냐? 우리가 몸에 하자 있는 병신들이라고? 근데 어떡하냐? 네 딸은 지석이 사랑하는데!"

지석-데이비드는 재빨리 달려가 민준-테일러의 입을 막았다.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때 재윤-제임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 눈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재윤-제임스가 경멸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회관에서의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지석-데이비드는 힘없이 아무 곳에나 앉아있었다. 재윤-제임스가 자신을 바라보던 그 경멸의 눈빛. 한때는 아버지처럼 따랐던 사람이 보낸 그 경멸의 눈빛.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민준-테일러는 후에 지석-데이비드에게 사과했다.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민서-맨디와의 연락도 되질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지석-데이비드는 오히려 민준-테일러를 위로하며 그의 술을 뺏어 들이켰다.

"지석아 우리 이제 어떡하냐"

여전히 혀가 꼬인 민준-테일러가 물었다.

"어떡하긴. 네 말대로 좆된 거지"


차라리 멈췄으면 하는 시간은 흘러 다음날이 왔다. 회관에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나타났다. 지석-데이비드는 놀라지 않았다. 조용히 그들이 가자는 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그들은 검은색으로 진하게 선팅된 차 앞에서 지석-데이비드의 몸수색을 했다. 혹시나 녹음기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한바탕 몸수색을 마치고 그들은 지석-데이비드를 차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차에는 당연히 재윤-제임스가 타고 있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재윤-제임스가 먼저 입을 뗐다.


"내가 널 많이 아낀 거 알지?"

지석-데이비드는 답하지 않았다. 재윤-제임스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이제는 알았기에.

"씨팔, 모르면 말아라.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냐"

재윤-제임스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어제 민서랑 얘기했다. 널 많이 좋아했더군. 그래서 더 화가 나. 네까짓게 내 딸을 탐냈다는 게. 다시는 내 딸과 연락하지 마라. APAR 활동? 내 보좌관 놈 중 하나가 마이너리티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한 것뿐야. 지금 그놈은 잘렸어. 널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다. 이 대화는 소문내건 말건 너 알아서 해라. 어차피 믿어줄 사람도 없겠지만"


지석-데이비드는 또 한 번 버려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