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R은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 APAR은 이제 혐오단체가 됐다. 후원도 거의 끊겼고 회관은 건물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참전용사 연금 법안이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지석-데이비드를 포함해 그가 아는 거의 모두가 APAR을 떠나갔다.
하지만 몇몇 어른아이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들은 '세상이 우리를 쓰레기 취급했으니 진짜 쓰레기가 되겠다'라며 소동을 피우다 연행되기도 했다. 지석-데이비드는 활기 없는 눈으로 이 소식을 뉴스로 접할 뿐이었다.
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하고 문을 열었다. 재홍-올리버였다. 한순간에 억울하게 사람들의 표적이 돼 도피 생활을 했던 재홍-올리버는 매우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의 눈은 빛났다. 지석-데이비드는 재홍-올리버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지석아"
"왜?"
"여기서 끝내긴 아쉽지 않냐?"
왜인지 모르게 그 말에 지석-데이비드는 힘을 얻었다.
"형이 다 준비해 놨다. 뭐라도 해보자"
재홍-올리버를 따라간 낡은 창고에는 어른아이들이 모여있었다.
"형이 말했지? 다 준비해 놨다고"
재홍-올리버가 지석-데이비드에게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근데 민준이는 안 보인다?"
"걘 안 한대. 알아서 잘살겠지 뭐"
재홍-올리버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고 창고 한편에 있던 나무 상자 위에 올라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도피 생활 동안 저는 우리가 또 다른 전쟁을 겪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전멸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멸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리 여기 모여있는 게 아닙니까? 저들이 우리가 전멸하길 원한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남들이 뭐 라건 우리는 자랑스러운 어른아이들입니다. 전선에서 싸웠고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이어 웃으며 말했다.
"여기 모인 우리, 뭐 거창한 걸 하자는 게 아닙니다. 아마 이 모임은 어른아이 '친목모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나가 일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여기 모여 서로 털어놓기나 합시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우리 어른아이들이 살았음을, 지옥에서 살아남았음을 기억해 주겠죠. 그러니 기운 냅시다!"
창고 안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지석-데이비드는 처음으로 재홍-올리버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