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준비 중에 찾아온 나의 아이
학기 말 시험을 준비하던 4월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좀 피곤하긴 했지만 한창 시험에 발표에 정신이 없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때는 특히 여름방학 중 해야 할 인턴십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우리 과의 모든 학생들이 스트레스가 절정이었던 시기였다. 시험과 과제를 하나둘씩 해치워 내며 동시에 이곳저곳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조차 소식이 없어 속만 타들어가고 있던 중, 방학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어느 날이었다.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다. 단순하게 컨디션 조절을 잘못한 건가 싶었고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나 시험이 없던 터라 자체 휴강에 들어갔다.
나는 평소에 두통이 꽤나 자주 있는 편이다. 그래서 다량의 타이레놀 복용을 피하기 위해 두통이 시작한 하루 정도는 약을 먹지 않고 기다린다. 머리가 아플 때 하는 나의 루틴은 커피를 1잔 마시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일정이 있다면 꼭 필요한 것만 하고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무리하지 않으면 다음날 머리가 언제 아팠냐는 듯 맑은 정신으로 눈을 뜨곤 한다. 그런데 이번의 두통은 그렇지 않았다. 새벽 내내 두통 때문에 잠을 설치던 나는 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약을 먹었다. 이 정도 했으면 두통이 멈추거나 약발이 들 법도 한데 이상하게 약이 잘 듣지 않았다. 시눅이 불어서 그런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4일을 내리 아프니 나의 인내심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워크인 클리닉으로 갈까 잠깐 고민했다가 이내 마음을 접고 한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으로 갔다. 클리닉으로 가면 타이레놀을 처방하고 쉬라고 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미 사흘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기 때문에 좀 더 직접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내가 갔던 곳은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 한의사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일반 하우스를 개조해서 병원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지, 돈을 써서 그런 건지, 치료를 통해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나의 두통이 멈추려고 그런 건지는 몰라도 침과 물리치료를 이틀 정도 병행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리가 맑아졌다. 두통이 멈춘 건 정말 좋았지만 그 덕에 마지막 시험은 출석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대급으로 나를 아프게 했던 두통은 아무래도 시험과 함께 인턴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고 5월의 시작과 함께 집에서 꽤나 떨어진 한 호텔의 인턴이 되었다. 인턴 자리를 못 구하는 건가 싶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있던 선배의 도움 덕에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학교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포지션으로 인턴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일한다고 하면 으레 호텔리어를 생각하기 쉬운데 내가 일하기로 한 포지션은 하우스 키핑이었다. 반듯한 정장에 구두가 아닌 움직이기 좋은 트레이닝복에 편한 운동화를 신고 첫 출근을 했다. 수업시간에 듣기만 했던 하우스 키핑의 하는 일에 대해 막연히 각오는 했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다. 방 1개당 정해진 시간 안에 방과 화장실을 청소해야 하는데 시간을 확인하는 매니저의 압박감이 주는 스트레스가 꽤나 높았고 심지어 집안일을 상당히 귀찮아하는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유리로 된 물건들을 씻을 때는 물기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소를 하다가 문득 학기 중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상대적으로 편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면접의 기회도 얻지 못하던 나에게 이런 일이 어디냐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력서를 몇 군데 뿌렸는지 기억도 안 나게 많이 돌렸지만 면접을 본 곳은 이곳 한 곳뿐이었다. 나의 짧은 영어를 탓하며 다음 학기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청소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닐 때 보다 챙겨 먹지도 못하고 남편이 불러도 듣지도 못하고 잠이 드는 날이 매일 되던 나날이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던 날이 계속되었고 어느덧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였다. 이상하게 생리가 늦어졌다. 나는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으로 좀 적응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어영부영 있다 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나있었다. 생리 예정일이 꽤나 규칙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늦게 하지 않는 것은 임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집 팬트리에 처박아두었던 테스트기가 생각나 찾아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임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