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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06. 2020

커피 한 잔과 나쁜 엄마

임신을 했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련다.

직장인들의 필수 아이템 커피. 스트레스 받을때 뿐만 아니라 졸음을 쫓을 때도 커피 만한 것도 없다. 눈만 돌리면 대형 커피 전문점이 바로바로 보이는데 요즘은 길 모퉁이 편의점에도 꽤 괜찮은 커피를 팔고 있으니까 언제든 원할때 쉽게 사기도 좋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은 지금, 나도 그중에 한명이다. 나는 커피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서 일할 때 커피를 매일 마신 건 두 말할 것도 없고 이곳 캐나다에서도 하루 한 잔은 꼭 마시고 많으면 세 잔 까지 늘 마셨다. 나는 캐나다에 와서 커피 머신만 지금 2개째 쓰고 있는데 남편의 표현에 따르면 커피 머신에 들어간 돈이 아깝지 않게 아주 뽕을 쪽쪽 뽑아서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의 커피 일상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한 잔, 점심 식사 후 무료한 오후 사이에 한 잔은 필수적으로 마시고 이후 약속이 있다면 또 커피 한잔을 추가적으로 마셨었다. 특히 시험기간이거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을 땐 꼭 커피를 들고 수업을 들어가곤 했는데 커피 한 모금이 주는 차분함과 평온함은 두근 거리는 나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에, 커피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즐거움이자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가성비 아이템이라고 말하고 싶다. 




임신을 알게 된 후 나는 나의 사랑하는 커피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많은 의사들이 이야기한다. 하루에 커피 한잔 정도는 괜찮다지만 모든 건 산모의 선택이라고. 임신 초반 나는 머리로는 마시지 말자는 생각과 동시에 나의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슬픈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었다. 물론 캐나다에서는 커피를 과하게 마시지 않는 이상 하루 한잔 커피는 아무렇지 않기에 산모가 먹고 싶다면 마셔도 된다며 권하고 있다. 오히려 못 마시게 됐을 때 산모가 겪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더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한국발 정보들과 임신한 사람들의 커피와 관련된 댓글들의 많은 경우가 임산부는 커피를 마셔도 되지만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보고 있으면 임신한 사람은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나도 커피를 포기한 수많은 임산부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내 하루의 작은 즐거움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임신 초기, 입덧이 있을 땐 커피 향도 딱히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았었다. 오히려 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던 내가 일주일이 넘도록 마시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래 이렇게 나는 아이를 위해서 참고 있어' 하는 조금의 안도감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입덧도 서서히 끝나고 임신 중기로 넘어가면서 나는 다시 커피가 한잔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출근할 때 꼭 챙겨가는 몇 가지가 있다. 점심 도시락, 물 한 통 그리고 텀블러에 내린 커피. 남편이 출근할 때 챙겨가는 커피는 그 냄새가 참으로 좋았다. 고소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감싸면 그날의 나는 한없이 예민해지기만 했다. 커피 냄새가 이렇게나 좋은데도 불구하고 참고 있어야 하는 나에게 화가 나거나 또는 우울 해지거나를 반복하길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나의 커피를 내렸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굴레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임신 초반, 만나는 사람들마다 10개월 정도 커피 참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기에게 좋지 않느니 안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라며 이야기하곤 했다. 거기에 나도 동의하면서 말이다. 막상 좋아하는 커피를 참아가며 지내보니 나는 그렇게 참을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다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를 마신다는 죄책감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나의 즐거움을 다시 마시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았고 나를 괴롭히던 두통까지 잡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함께 식사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식사가 끝난 뒤 내가 커피를 찾는 것을 보며 일행 중 한 분은 임신했는데 커피를 마시냐며 꽤 놀라시기는 했지만 그게 대수랴. 내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한 것을. 참고로 나는 커피뿐만 아니라 콜라도 매우 잘 마시고 있는데 하루에 최대한 마실 양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즐기고 있다. 무조건 참는 건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죄책감을 내려놓으니 내 마음이 좀 더 여유가 생기고 차분해졌다. 한국에 계신 어른들이 아시면 분명 잔소리를 듣겠지만 나는 나쁜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10달이 뭐 대수라고 그걸 못 참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임산부에게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은 지금, 나는 나의 작은 즐거움인 커피 한 잔을 내리며 뱃속의 아기와 함께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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