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Jun 06. 2020

가을엔 초콜릿

날씨가 흐리고 추울 땐 초콜릿과 커피 한잔을 마시자. 

아직 9월 초, 캘거리는 벌써 가을이 찾아왔다. 그 사이 내 몸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입덧은 멈춘 지 오래되어 마음껏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으며 배는 어느덧 스쳐 지나가며 보기만 해도 임산부라는 걸 정확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나왔다. 고개를 숙이면 발이 보이지 않게 된지는 오래다. 


이곳의 여름은 6월 부터 시작해 8월이면 끝이 난다. 9월은 계절이 변해가는 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집 앞의 나무들이 벌써 노란색으로 변해 바싹 마른 나뭇잎이 벌써 파란 잔디 위에 수북하다. 잔디까지 색이 바래지려면 얼마나 남았을지 짐작은 가지 않지만 이것도 조만간일 것 같다. 아직 9월의 둘째 주 길목일 뿐인데 말이다. 


얼마 전 남편과 다음 주에 눈이 올지 아니면 핼러윈에 눈이 올지를 두고 내기를 했다. 올해는 눈이 좀 천천히 오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그래도 10월이 다돼가면 오지 않을까 했지만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도 그랬듯이 조만간 눈이 올 것 같다. 눈은 언제나 그랬듯 갑자기 오겠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씨가 쌀쌀해지는 것은 싫지만 추운 날 잘 어울리는 뜨거운 커피는 너무나 반갑다. 나는 아닌 척 하지만 내심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갓 내려 하얀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커피 한잔 그리고 달달한 초콜릿 한 조각. 이것은 나에게 세상 모든 스트레스를 한 번에 없애주는 매우 강한 약 같은 건데 이 즐거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이런 환절기 때는 특히나 밤이 길어지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나 힘든데 임산부인 나에게 이런 미세한 부분이 꽤나 커다랗게 작용하기 때문에 요즘 나의 몸 컨디션은 최악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밝은 햇볕이 아닌 어두 컴컴한 밤이 그대로 인 것이 불쾌하지만 남편은 오죽하랴.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고 괜스레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요즘은 특히나 이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많이 찾는다. 


남편은 신기하게 다른 간식은 잘 먹지 않지만 꼭 찾는 게 있다. 바로 초콜릿. 특히 콕 집어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는데 매년 이맘때쯤이면 코스트코에서는 대용량으로 팔기 시작한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지난주, 오래간만에 코스트코를 가니 벌써 그 초콜릿이 나와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박스 안에 가지런하게 놓여 '나를 가져가세요' 하며 매대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하나를 카트에 넣고 집에 가져왔던 그 초콜릿은 일주일이 채 안된 지금 없다. 약 50개가 넘는 초콜릿 한 박스를 이미 다 먹은 걸 보면 날씨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긴 큰가 보다. 우울할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이 있듯, 오늘같이 흐린 날엔 뜨겁게 끓인 물에 커피 한잔 내리고 초콜릿이 몸서리치게 생각난다. 나는 오늘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커피를 내린다. 사소한 것으로 이렇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날씨가 흐려도 괜히 좋은 하루다. 커피 한잔하고 이따 다 먹은 초콜릿을 새로 사 와야겠다. 

이전 06화 영어공부가 필요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