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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06. 2020

4번째 초음파

초코 우유 안녕. 




캐나다에서 임신을 하고 알게 되는 것 중 제일 특이한 점은 초음파를 딱 3번만 이용하게 된다. 태아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3번의 기회로 뱃속의 아기를 볼 수 있다. 


대략적 프로세싱을 설명하면 임신 사실을 알고 패밀리 닥터를 만나면 임산부의 마지막 생리일과 관계일을 가지고 몇주쯤 됐는지를 예측하는 것 같았다. 그 자료를 토대로 병원에서는 약 6~8주쯤 되는 시기에 첫번째 초음파 예약을 잡을 수 있도록 안내 해준다. 태아가 자궁에 자리를 잘 잡았는지를 확인하는 첫번째 초음파를 하고 나면 약 12주차쯤에 목투명대 (기형아) 검사를 하기위한 초음파를 한다. 그리고 18주차 쯤해서 실시하는 정밀초음파를 마지막으로 아기를 보는걸 더이상 하지 않는다.   


18주차 정밀초음파를 끝낸 직 후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바로 추가 초음파 촬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기가 생기고 나서 한국의 육아정보 카페를 들어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곳의 다양한 주수별 사례들과 내용들을 보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물론 시중에 나와있는 출산 책도 읽고 캐나다에서 임신하면 받는 두꺼운 임신 책도 읽고 했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이 더 편한 나에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댓글이 달려있는 정보를 읽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다.   


정밀 초음파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많은 비슷한 시기의 임산부들이 또는 시기를 겪은 임산부들이 정밀 초음파를 한 번에 끝내려면 아기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초코 우유를 마시면 아기가 많이 움직인다는 내용의 글을 읽게 되었고, 그 밑으로 쭉 달린 수많은 동의 댓글들을 보며 나도 초코우유를 한잔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밀 초음파를 하는 날이 왔고, 나는 임신 후 처음으로 초코우유를 한병 원 샷 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서 정밀초음파를 시작했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아기 손 발 신체 장기 얼굴은 너무나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성별을 확인할 때도 너무나 잘 움직이는 아이 덕분에 한 번의 지체 없이 이 모든 게 오늘 끝나는구나 하며 나는 역시 초코우유를 마셔서 그런가 하며 마시고 오길 잘했구나 기뻐하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초음파 검사에 대해 조금 아쉬워했다. 


그렇게 정밀 초음파가 끝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의사가 들어왔다. 캐나다는 한국과 달리 초음파 검사를 해주는 담당 전문가가 따로 있고 그걸 해석하는 의사가 따로 있다. 그래서 초음파를 보면서 아이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고 화면에 보이는 팩트만 이야기해주는 식이다. 이건 손이고, 이건 발이야, 이건 콩팥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초음파가 끝나면 결과는 그 센터 안의 초음파를 해석하는 의사가 내 정보를 보면서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산모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의사가 나의 초음파실에 들어왔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다른 건 정상인데 아이의 위장이 주수에 맞지 않게 너무 큰데 추가로 초음파를 한번 더 봐야 할 거 같다는 이야길 했다. 물론 덧붙여 아이가 양수를 많이 마시면 이런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건 이 검사를 위해서 다른 더 큰 병원으로 나를 안내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할 초음파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일반 산모들은 가지도 않는 고위험군 센터로 나를 안내하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들고 순간 사색이 되었다. 데스크에서 나의 소견서를 받아보더니 다음에 가야 할 센터에 대해 설명해주며 예약을 잡아주었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으로 검사가 필요하거나 의사를 만나야 하면 당사자가 직접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번엔 센터에서 바로 예약까지 잡아주니 더욱 멘붕에 빠지게 되었다. 뭔가 좋지 않은 걸까 하는 걱정과 함께 나는 마지막이 되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 초음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것저것 검색해보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아기가 양수를 많이 마셔서 위장이 크게 나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기형아로 확진되는 일도 있다는 내용을 보면서 나는 또 충격에 빠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남편은 아기가 양수를 많이 마셔서 그런 거겠지 하며 평소 마지 시도 않던 초코우유를 마셔서 그런 것 같다고 아기가 처음 마셔보는 거라 맛있었나 보다며 나에게 별일 아닌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고 나도 그렇겠거니 생각했지만 의사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없으니 이게 참 미칠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다음 초음파 일정까지 약 4주 동안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부엌 한편에 아기 용품 놓을 공간도 정리하고 작은방 옷장도 싹 비워서 아기 용품을 하나씩 정리했어야 했는데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유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캐나다에서 4번째 초음파를 의미하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지인 중 한 명은 초음파를 2번만 본 분도 계신다. 임신 당뇨 때문에 고생하신 다른 분은 3번째로 하는 정밀 초음파 이후 임당 검사 때까지 아무 검사를 하지 않은 분도 계신다. (하지만 이런경우 아기의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초음파검사를 실시한다고 함) 이런 식으로 정밀 초음파 이후 딱히 큰 이슈가 없으면 하지 않을 것을 나는 왜 하러 가는 건가 하는 마음에 괜히 울컥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해결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를 제일 처음 생각하는데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잠시 동안 회피해버린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이걸 붙들고 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싶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려 뇌의 어디 한 구석에다가 처박아 두는데 사실 그런 척할 뿐이지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당장 뭔가를 해서 아기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이럴수록 그냥 건강하게 생활해야겠다 싶어 강아지랑 산책도 더 자주 하고 채소나 과일도 많이 좀 신경 써서 먹었다.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자책하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왜 하필 초코우유를 그날 마신 건가 싶기도 하고 기형아 검사 때 나오지 않았던 문제가 이제 나오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계속 파고들었지만 내 몸 안에 있는 작은 생명체에 문제라도 생기는 것 아닌가 싶은 불안감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 깊은 곳에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나의 불안감을 구겨서 지내다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보내던 4주가 지나갔고 검사 당일. 남편은 회사에 반차를 내고 나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물을 왕창 마시면서 센터로 향했다. 확실히 고위험군 센터 주변은 암 전문병동 척추 전문병동 등 평소 볼 수 없는 병원 건물이 많았다. 스쳐 지나가며 보기만 해도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드는 이놈의 전문 병동들. 나를 담당한 초음파 전문의는 나에게 위 크기 때문에 온 거 맞지 하며 다시 한번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상기시켜주었고 초음파를 시작하였다. 짧은 검사가 끝나고 전문의를 기다리는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들어오셨고 나에게 아기의 수치가 다 정상이라고 한마디 하시는데 괜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마음 졸였나 하며 말이다. 남편은 내가 울자 당황하며 달래주는데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너 아기 정상이야 이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나 보다. 


사람은 한 번씩 확실한 말 한마디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머릿속으로는 아이가 양수를 많이 마셔서 그런 걸 알고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는 4번째 검사를 하게 되니 이거 뭐 문제가 심각한 거 아닌가 온갖 고민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아니라는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왜 이제야 알 수 있게 된 건지. 나는 한 동안 초코우유를 안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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