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6만 원이 이제 아깝다.
캘거리는 벌써 눈이 온다. 임신 25주 차, 벌써 9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임신을 하고 벌써 계절이 바뀌다니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게 와 닿는다. 아기가 클 수록 내 몸도 같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바로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고3 때 매일 먹고 앉아 있기만 한 덕에 59kg까지 찐 것이 나의 최대 몸무게였는데 지금 나는 남편의 몸무게를 넘어섰다. 나와 남편은 키가 꽤 작은 편이어서 숫자만 보면 에게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나의 지금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배는 풍선이 터지기 직전처럼 거대해졌고,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 쪽으로 붙은 살들은 꼭 알이 꽉 찬 소시지가 붙어 있는 것 같고, 종아리는 튼실한 무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등에 붙은 살은 삼겹살 마냥 툭 하고 튀어나왔는데 속옷을 입거나 상의를 입을 때마다 이 부분이 꽤 신경 쓰인다.
인터넷과 SNS를 살펴보니 한국의 임부복은 체형을 가려주면서도 멋스럽게 입는 임부복들이 저렴한 가격에 잘 나와있었다. 반면 이곳의 임산부들은 저렇게 입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노출을 하거나 임산부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D라인을 드러내는 옷들을 많이 입는다. 문화 차이라 그런 건지 임신을 한 여성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반감을 가지지 않는다. 만삭의 몸을 한 것 드러내는 옷을 입고 다니는 여기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당당하게 입고 다녀야지 했지만 막상 내가 임신을 하고 나니 한국인의 정서에 반하는 그런 옷을 입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뭔가 하면 안 되는 것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신하게 몸을 돌봐야 할 산모가 입어서는 안 될 그런 느낌.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이곳의 여성들을 볼 때면 상대적으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보일 때도 있다. 왜냐하면 나의 현실은 XL 사이즈의 맨투맨이나 또는 펑퍼짐한 티셔츠에 레깅스가 전부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나도 당당하게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쁜 디자인의 옷을 꼭 한번 입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옷장에 걸린 내 옷들을 볼 때마다 예쁜 임부복 사야지 하면서도 내 옷 한 벌 안사면 아기 옷 두 벌 정도니 한 번 참고 안 쓰면 태어날 딸에게 좋은 거 예쁜 거 하나 더 해줄 수 있다는 마음에 괜히 망설여지길 수백 번. 남편은 그냥 한 두벌 정도는 사라고 했지만 좀처럼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 얼마 전 매장을 방문했다. 사실 여기 옷들이 한국과 비교해보면 재질에 비해 비싸고 특유의 미국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선뜻 사기가 꺼려졌지만 그래도 한 벌 정도는 갖고 싶었다. 수백 번 고민만 했었는데 결국 온 것이다. 실제로 매장에 가보면 한국에서 파는 것 만큼 예쁘다고 느껴지는 디자인은 없지만 그중 한 두 가지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원피스 몇 벌을 고른 뒤 직접 입어 보았다. 입었을 때 감촉이 꽤 부드럽고, 이곳 여성들이 좋아하는 깊은 목 파임과 과한 레이스 등 불편해 보이는 디자인에 반해 실제 착용감은 꽤 편해서 좋았지만 나는 다시 조용히 매장 옷걸이에 내가 입었던 옷들을 걸어놓았다. 이곳의 모든 옷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디자인의 옷을 직접 입어보면 허리에서 허벅지까지 떨어지는 핏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서 나처럼 라인이 울퉁불퉁하게 살이 찐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입기가 부담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그래도 이런 옷을 입고 싶었던 터라 한벌 살까 했지만 가격표에 적힌 60불을 보며 한 두 번 입고 말 옷을 이 가격에 사기엔 아깝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참고로 현재 환율로 따져보면 캐나다의 60불은 한화로 약 6만 원이 안 되는 돈이다.
몇 가지 입어본 옷 들 중에 배를 부드럽게 감싸줘서 입었을 때 상당히 편하게 느껴진 홈웨어로 입기 좋은 스커트 한벌만 결국 사서 나왔다. 이 옷을 결정할 때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출산 후 입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가격을 보니 마음에 들었던 원피스의 3분의 1 가격이라는 사실에 지갑을 열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입어본 옷 중에 제일 저렴한 것이었다.
매장에서 거의 1시간 동안 입어보고 고르고 했는데 정작 내 손엔 스커트 한 벌이 전부였다. 그곳을 나오며 조금은 아쉽지만 동시에 돈을 아꼈다는 작은 위로가 몰려왔다. 이 돈으로 딸에게 더 좋은걸 해줘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은 싫었다. 임신 전에도 60불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필요하다면 큰 고민 없이 쓰던 나였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나에게 쓰는 60불이 너무나 아까운 건 왜일까. 가족이 하나 더 느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에게 돈을 쓰지 않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결제한 아기 유모차는 800불이었는데 말이다. 하,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이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