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Jun 06. 2020

코 밑의 각질

무지는 무서운 것. 

최근 새로운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코 밑을 확인하는 것이다. 임신 전 잡티가 거의 없는 꽤나 괜찮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임신 초반까지도 그 상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임신 후 피부 트러블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하얗게 버짐이 핀 것처럼 코와 입 주변의 피부가 변해있었다. 단순하게 날씨가 추워지고 건조해지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평소보다 꾸덕한 크림만 더 발라주면서 관리하기만 했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피부부터 예민하게 반응하기에 올해도 다른 여느 해들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하얗게 튼 피부를 보며 '겨울이 진짜 왔구나'하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코밑의 하얀 각질은 점점 심해졌고 평소 환절기 피부 트러블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고보습 크림만 더 발라줘도 괜찮아졌었던 각질들이 아무리 발라도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가벼운 따가움을 동반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출산 백과 책을 뒤적이며 읽어보니 임산부 소양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사람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임신 후 평소 있지 않던 다양한 피부 트러블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소양증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고 얼굴의 턱과 코 주변만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각질이 얼굴을 다 덮는다던지 다른 부위에 크게 있었다면 정말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초 고보습 관리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매일 밤 임산부 오일을 온몸에 바르는 것도 모자라 얼굴에 바르는 것까지 마무리해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잘 사용하지 않는 에센스도 중간에 한 번씩 더 발라주었다. 물도 많이 마셔주고 먹는 것도 신경 쓰면서 말이다. 확실히 보습에 신경 쓰니 따갑던 코 주변이 간지러움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 번씩 심하게 건조한 날이 아닌 이상 따갑거나 간지러움은 느끼지 않고 있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막연히 내 몸이 많이 변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이 막연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 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내가 이런 피부 변화 때문에 고생할 줄 누가 알았으랴. 배만 커지고 살만 찌는 변화가 아니라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불편한 골반과 허리, 살이 찌면서 동반하는 무릎 통증 이런 것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에 내가 이때까지 배운건 뭔가 싶어 화가 나기도 한다. 저출산이라고 경고할게 아니라 이런 걸 좀 자세히 배운다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임신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직까지도 생각보다 많은 산모들이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언제쯤이면 모든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100퍼센트 이해하는 날이 올까? 


어른들은 너무나 쉽게 말씀하신다. 남들 다 갖는 아이 얼른 낳아서 남들처럼 키우라고. 막상 내가 남들 다 하는 임신을 하게 되니 저 말이 얼마나 미워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무책임하면서도 무서운 말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남들 다하는 거 너는 왜 안 하냐는 그 말은 정말 이기적인 발언이다. 


내 눈으로 아이의 상태를 한 번에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항상 마음 졸이며 아이를 품고 있는 10달 동안 나는 그저 담당의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한 번씩 나의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하는 말을 99.9% 믿어야 하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조금 이상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날은 정말 눈앞이 깜깜하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뼛속 깊숙하게 와 닿는다. 


26주 차, 요즘은 거울 너머 보이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임산부입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시기이다. 터질듯한 배와 가슴, 살이 쪄서 동그랗게 변한 얼굴, 그리고 하얗게 튼 피부 까지. 지금까지 사소하지만 별일 아닌 많은 일들 덕분에, 특히 최근엔 이놈의 피부 트러블 때문에 조금은 더 까까이 임신에 해대 이해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전 10화 드레싱 없는 샐러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