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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06. 2020

드레싱 없는 샐러드

무슨 일이 있어도 임신 당뇨는 안돼! 

27주 차 어느 날, 임신 당뇨 재검사 연락이 왔다. 나는 아닐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재검이라니! 임산부들이 마음 놓고 살찌고 있다가 임신 당뇨 검사 때 잔뜩 긴장하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흘려 들었었는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이야. 임신 당뇨 확정을 받기 싫었던 나는 병원에서 전화를 받은 날부터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임신 당뇨 확정을 받기 싫었는데 일단 먹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음식을 제한해서 먹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매일 피를 뽑아 당 검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싶었다. 책에 나온 사례들이 너무 제한적이라 인터넷을 검색해봤는데 한국의 수많은 임산부들이 검사를 앞두고 있으면 되도록 음식을 과하게 먹지 않고 임신 당뇨 검사를 한다는 후기들이 많았고 그것 덕분인 건지 원래 호르몬에 문제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검사에서 다들 문제없이 통화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어차피 호르몬 문제라서 관리를 해도 걸릴 사람은 걸린다고 하던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단부터 조절했다.


제일 먼저 입에 달고 살던 과자들을 모두 정리했다. 임신을 핑계로 초콜릿에 쿠키에 아이스크림까지 간식을 무식하게 먹다 보니 순간적으로 영향이 미친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당류는 줄이면 나에게도 아기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간식을 모두 손이 잘 가지 않는 서랍장에 넣어버렸다. 그다음으로는 자주 먹던 흰 식빵을 100% 통밀 빵으로 바꾸었다. 확실히 캐나다는 이런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나라이다 보니 통밀이나 통보리 등의 빵을 가까운 마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식빵의 경우 사람마다 먹고 난 후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맞지 않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당뇨 관리에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봉지 샀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한 건 야채 먹는 것을 늘리기였다. 야채 섭취를 늘린다는 것은 뭔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물에 씻어서 잘 털어낸 뒤 손질해서 먹으면 끝이지만 그 과정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양배추를 한통 사서 필러로 잘게 채 썰듯 손질한 다음 물에 30분 정도 담가놨다. 이 과정을 거치면 생 양배추로 먹을 때 쓴맛이 덜한다나 뭐라나. 그 뒤 샐러드 탈수기에 넣어 물기를 쫙 빼주고 우리 집에서 제일 커다란 통에다가 잘 넣어두었다. 그리고 몇 가지 생으로 먹을 때 맛있는 야채들, 오이나 파프리카 그리고 토마토, 이것들을 잘 씻은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생 양배추에 드레싱 없는 샐러드에 오이 파프리카 몇 조각 그리고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구운 닭고기를 먹었다. 참고로 남편은 늘 먹던 식단 그대로 먹었는데 같이 앉아서 다른 음식을 먹는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이걸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 검사 때까지만 하면 되는 것이기도 하고 이걸 하면 내가 임신 당뇨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확신 같은 게 생겼다. 정말 다행스러웠던 건 먹기 조금 불편할 수 도 있었던 익히지 않는 야채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술술 잘 먹혔다는 점이다. 뱃속의 아기가 자연식을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무난하게 건강식을 실천했다. 그리고 빼놓지 않고 저녁 산책까지 했는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게 산책은 늘 하던 일이었는데 필요에 의해서 꼭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평소보다 더 힘이 났다. 하지만 집에 오면 더 빨리 지쳤는데 임신 당뇨에 걸리지 않겠다는 나의 강한 의지가 평소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게 한 탓인 것 같다. 누가 보면 이걸 뭐 1~2주씩 하는 줄 생각할 것 같은데 사실 이 생활 패턴은 3일 동안 이어진 것이다. 하하. 


그리고 대망의 재검 날, 식단 덕분인지 매일 걷던 산책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문제가 없으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임당이 확정되면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도 못 마시고 초콜릿도 못 먹고 이것저것 제약이 많았을 텐데 너무나 다행이었다. 버릇은 못 숨긴다고 누가 그랬던가. 검사가 끝나기 무섭게 마트로 간 나는 한 손엔 초콜릿 다른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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