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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06. 2020

60 CAD

나에게 쓰는 6만 원이 이제 아깝다. 

캘거리는 벌써 눈이 온다. 임신 25주 차, 벌써 9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임신을 하고 벌써 계절이 바뀌다니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게 와 닿는다. 아기가 클 수록 내 몸도 같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바로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고3 때 매일 먹고 앉아 있기만 한 덕에 59kg까지 찐 것이 나의 최대 몸무게였는데 지금 나는 남편의 몸무게를 넘어섰다. 나와 남편은 키가 꽤 작은 편이어서 숫자만 보면 에게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나의 지금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배는 풍선이 터지기 직전처럼 거대해졌고,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 쪽으로 붙은 살들은 꼭 알이 꽉 찬 소시지가 붙어 있는 것 같고, 종아리는 튼실한 무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등에 붙은 살은 삼겹살 마냥 툭 하고 튀어나왔는데 속옷을 입거나 상의를 입을 때마다 이 부분이 꽤 신경 쓰인다. 




인터넷과 SNS를 살펴보니 한국의 임부복은 체형을 가려주면서도 멋스럽게 입는 임부복들이 저렴한 가격에 잘 나와있었다. 반면 이곳의 임산부들은 저렇게 입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노출을 하거나 임산부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D라인을 드러내는 옷들을 많이 입는다. 문화 차이라 그런 건지 임신을 한 여성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반감을 가지지 않는다. 만삭의 몸을 한 것 드러내는 옷을 입고 다니는 여기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당당하게 입고 다녀야지 했지만 막상 내가 임신을 하고 나니 한국인의 정서에 반하는 그런 옷을 입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뭔가 하면 안 되는 것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신하게 몸을 돌봐야 할 산모가 입어서는 안 될 그런 느낌.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이곳의 여성들을 볼 때면 상대적으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보일 때도 있다. 왜냐하면 나의 현실은 XL 사이즈의 맨투맨이나 또는 펑퍼짐한 티셔츠에 레깅스가 전부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나도 당당하게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쁜 디자인의 옷을 꼭 한번 입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옷장에 걸린 내 옷들을 볼 때마다 예쁜 임부복 사야지 하면서도 내 옷 한 벌 안사면 아기 옷 두 벌 정도니 한 번 참고 안 쓰면 태어날 딸에게 좋은 거 예쁜 거 하나 더 해줄 수 있다는 마음에 괜히 망설여지길 수백 번. 남편은 그냥 한 두벌 정도는 사라고 했지만 좀처럼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 얼마 전 매장을 방문했다. 사실 여기 옷들이 한국과 비교해보면 재질에 비해 비싸고 특유의 미국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선뜻 사기가 꺼려졌지만 그래도 한 벌 정도는 갖고 싶었다. 수백 번 고민만 했었는데 결국 온 것이다. 실제로 매장에 가보면 한국에서 파는 것 만큼 예쁘다고 느껴지는 디자인은 없지만 그중 한 두 가지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원피스 몇 벌을 고른 뒤 직접 입어 보았다. 입었을 때 감촉이 꽤 부드럽고, 이곳 여성들이 좋아하는 깊은 목 파임과 과한 레이스 등 불편해 보이는 디자인에 반해 실제 착용감은 꽤 편해서 좋았지만 나는 다시 조용히 매장 옷걸이에 내가 입었던 옷들을 걸어놓았다. 이곳의 모든 옷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디자인의 옷을 직접 입어보면 허리에서 허벅지까지 떨어지는 핏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서 나처럼 라인이 울퉁불퉁하게 살이 찐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입기가 부담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그래도 이런 옷을 입고 싶었던 터라 한벌 살까 했지만 가격표에 적힌 60불을 보며 한 두 번 입고 말 옷을 이 가격에 사기엔 아깝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참고로 현재 환율로 따져보면 캐나다의 60불은 한화로 약 6만 원이 안 되는 돈이다. 


몇 가지 입어본 옷 들 중에 배를 부드럽게 감싸줘서 입었을 때 상당히 편하게 느껴진 홈웨어로 입기 좋은 스커트 한벌만 결국 사서 나왔다. 이 옷을 결정할 때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출산 후 입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가격을 보니 마음에 들었던 원피스의 3분의 1 가격이라는 사실에 지갑을 열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입어본 옷 중에 제일 저렴한 것이었다. 


매장에서 거의 1시간 동안 입어보고 고르고 했는데 정작 내 손엔 스커트 한 벌이 전부였다. 그곳을 나오며 조금은 아쉽지만 동시에 돈을 아꼈다는 작은 위로가 몰려왔다. 이 돈으로 딸에게 더 좋은걸 해줘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은 싫었다. 임신 전에도 60불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필요하다면 큰 고민 없이 쓰던 나였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나에게 쓰는 60불이 너무나 아까운 건 왜일까. 가족이 하나 더 느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에게 돈을 쓰지 않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결제한 아기 유모차는 800불이었는데 말이다. 하,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이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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