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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06. 2020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네

임신 막달과 과잉 걱정

임신 막달, 사소한 일 하나에 눈물이 났다가 화를 냈다. 내 감정을 평소처럼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내  마음이 불안정하니 글도 마음처럼 이상했다. 누가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매 번 간단히 일기 쓰듯 써야지 하고 마음을 잡고 책상에 앉았다가 이내 혼자 짜증 내기를 반복했다. 어느날은 하얀 바탕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다 노트북을 끄곤 했다. 출산이 다가올수록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하루는 혼자 문득 '이럴 줄 알았으면 담당의에게 자연분만이 너무 무서우니까 제왕절개로 해달라고 할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으로 미웠다. 임신기간 동안 큰 문제없이 잘 넘어가고 있던 나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출산이 주는 압박감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글도 멈추고 나도 멈춘 지 꽤 시간이 흘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강아지 산책을 한 뒤 집 정리를 마치고 건강하게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글을 다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는지 또 노트북을 덮었다. 이토록 나를 두렵게 했던 건 출산이었다. 다가오는 예정일은 나를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 임신하기 전, 육아보다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있던 나는 임신기간을 거치며 무서움에 대해 단단해지긴 커녕 쉽사리 무너지기만 했다. 마치 잘 쌓고 있던 모래성에 크고 거친 파도가 밀려와서 쓸어버리면 다시 천천히 성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듯 하루에도 마음이 수백 번 요동쳤다. 단지 출산의 두려움 때문에.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뱃속에서 하루하루 자라는 나의 아기는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어떨 땐 배가 튀어나올 듯 움직이다가도 한 번씩 미동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기가 움직일수록 내가 나약한 엄마 같아서 괜히 미안해졌다. 호르몬 때문인 건지 정말 내가 약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하루에도 수백 번 아니 수만 번씩 내 마음이 시끄러웠고 그럴 땐 그냥 집 밖으로 나가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갔다.


임신하고 제일 많이 갔던 게 창고형 대형마트였는데 그곳은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기 좋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느덧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트를 한 바퀴 쭉 돌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냥 저렇게 매일을 사는 사람과 다를 게 없는데 왜 그렇게 슬펐을까 하며 기분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경이 끝나면 출구 쪽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거기서 하루는 커피 한잔 또 다른 하루는 아이스크림 하나 이런 식으로 그날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이 들었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위안받던 그곳에서 늘 마주쳤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 옆에는 항상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가 같이 있었는데 엄마와 아들이 분명했다. 그 엄마의 카트에도 물건이 딱히 없었고 같이 있던 아들은 엄마와 마트 안을 번갈아가며 구경하기 바빴다. 그리고 카페테리아에서 꼭 아들은 아이스크림 엄마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3번 정도 방문하면 한 번은 꼭 마주쳐서 꽤 기억에 남는 모자였다. 그 당시엔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여자도 나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 에너지를 얻으려 한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은 여전히 갈대처럼 이리 휘고 저리 휘었지만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새벽부터 시작된 진통은 꼬박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배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다가도 힘내겠다고 꾸역꾸역 햄버거를 먹는 내 모습에 조금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이상했다. 그렇게 무섭던 출산이었는데 막상 진통이 시작되니 잘 낳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궁문이 5cm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병 원덕에 걷지도 앉지도 못할 만큼 아프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었고 진통이 시작한 지 약 18시간 정도 됐을 때 드디어 나는 나의 딸과 만날 수 있었다. 출산의 두려움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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