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Jun 06. 2020

반가워, 내 딸

5cm가 뭐길래

초음파를 통해 마지막으로 딸의 모습을 본건 39주 차 모습이었다. 3.6kg의 빅 베이비가 예상된다며 초음파를 봐주던 선생님은 웃으셨다. 그리고 예정일을 이틀 넘긴 새벽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출산과 관련된 글을 수 없이 많이 봐온 터라 아프다 말다를 반복하는 진통을 느끼며 이거구나! 싶었다. 아침이 되니 진통 간격이 6~8분을 왔다 갔다 했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리 싸 둔 출산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가기 전 우리 집 강아지 하이를 친구 집에 잠시 맡겼다. 친구는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오늘 정말 아기가 나올 것 같다며 반색했다. 사실 이틀 전, 가진통을 진진통으로 착각해서 병원을 갔었는데 진통이 규칙적이지가 않고 아직 병원에서 해줄 게 없으니 규칙적인 진통이 생기면 다시 오라고 했었다. 그날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규칙적인 진통이 어떤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이는 친구 강아지를 보더니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우리가 가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 마음도 놓이고. 


이제 진짜 병원으로 가는 도중 문득 배가 고프면 더 힘들 수 있으니 아프기 시작하면 꼭 밥을 먹고 병원을 가라는 수많은 글들이 생각났다. 남편은 가는 길에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뭐 없나 하더니 중간에 차를 잠시 세웠고, 남편과 함께 마지막 만찬으로 햄버거를 하나씩 먹었다. 햄버거를 한입 하고 진통이 오면 씹던걸 멈추고 온몸으로 진통을 느끼다가 괜찮아지면 또 한입 하고를 반복하였다. 먹고살겠다고 이렇게 먹는 내 모습에 조금은 웃음이 났지만 진통은 나에게 웃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배를 채운 뒤, 병원에 도착했다. 접수처에서 배가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것저것 알려주니 간호나 한 분이 나와서 나를 침대로 안내했다. 아니 배가 너무 아프니까 혼자 침대에 눕는 걸 못해 남편이 도와주는데 괜히 서러워졌다. 누워 있으니 담당 간호사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로 열심히 대답하던 중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옆에 서서 보고 있는 남편에게 괜히 화가 났다. 사람이 겪어 볼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겪는 기분이었다. 담당 간호사는 내진을 해보더니 아직 3cm밖에 열리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 정도면 입원해서 출산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은 3cm 정도로는 아직 출산이 임박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는 병원마다 다르고 환자의 상태마다 다르지만 보통 자궁이 5cm까지 열리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보낸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2~3cm 정도 열리면 입원을 해서 다 열리기 전까지 3대 굴욕이라고 불리는 내진, 관장, 제모를 한다고 하던데 이곳에서는 전혀 그런 것 없었다. 진통이 시작돼 아파서 병원을 가면 내진을 한 뒤 5cm가 넘으면 출산하러 입원실로 가고 아니면 집에 간다. 다시 돌려보내 질 때는 어찌나 서러운지... 이놈의 5cm가 안 열려서 이런 고생을 하나 싶었다. 정말 입 안에서 욕이 맴돌았다. 


돌아서서 나가려는 간호사에게 너무 아프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하니 간호사는 지금은 에피 듀럴을 줄 수는 없고 모르핀을 줄 수 있다고 했고 나는 무조건 오케이를 외쳤다. 모르핀을 맞자마자 나는 병원에서 다시 나와야 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진 나는 남편에게 집에 가지 말고 병원에서 있어보자고 했고, 남편은 나와 함께 병원 로비에서 조금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앉아있었다. 하지만 모르핀을 맞으니 완전히 아프지 않겠지 하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진통이 없을 땐 잠이 들고 진통이 오면 아프고를 계속 반복하였다. 2시간을 이렇게 아프고 나니 이건 뭐 어디 아파서 벌거벗겨진 동물 같은 기분이 들어 집으로 다시 갔는데 이때가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고작 2cm가 모자라는 이유 때문에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는데 너무 속이 상했다. 동시에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생각하니 서러워 눈물이 났다. 5cm가 뭐라고! 그때 당시엔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사람을 다시 돌려보내는 캐나다 병원의 시스템이 야박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다시 도착한 나는 통증을 줄여보기 위해서 짐볼에 앉아 호흡도 해보았지만 좋아지기는 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진통의 강도는 점점 강해져 갔고 진통을 보낼 다른 방법으로 샤워를 하던 도중 벽을 잡고 엉엉 울며 병원을 가야겠다고 남편을 불렀고 그렇게 다시 병원을 간 게 저녁 7시쯤이었다. 그때 나는 무슨 정신으로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덕에 입고 간 옷이 수면바지에 집에서 편하게 입는 티셔츠였다. 거기에 너무 추워서 어그부츠를 신었었는데 몰골이 아주 말이 아니었다.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아무것도 안 먹은 내가 신기했었나 보다. 나는 진짜 잘 챙겨 먹는 사람인데 정말 아프니까 밥도 안 넘어가고 악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진통이 길어지고 강도도 세지다 보니 이번엔 정말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 도착은 했는데 접수처까지 걷지 못하고 병원복에 서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분들이 날 보더니 휠체어를 가져다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담당 간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다시 접수를 하고 침대에 누워 내진을 하니 간호사는 5cm가 열렸다며 이제 분만실로 이동하자고 하였다. 정말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진짜 너무 신기하게도 침대에 내려온 순간 양수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아기가 나올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걷지 못할 만큼 아파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은 꿈만 같았다 이때부터는 사실 너무 아파서 중간중간 기억이 없다. 그냥 가는 내내 에피 듀럴 달라고 외쳤던 것 같다. 덕분에 1인실에 가자마자 에피 듀럴을 맞았고 동시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에피 듀럴 즉 무통주사를 맞으면 진행이 더뎌진다고 한다. 그래서 간호사도 의사도 앞으로 5시간 정도 뒤면 아기가 나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급할 게 없다는 분위기였고, 같이 있던 남편은 그걸 보더니 긴장이 살짝 풀렸는지 커피 한잔 하고 와야겠다며 자리를 비웠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나도 지금부터 10cm가 다 열릴 때까지 조금 쉬어야겠다고 눈을 잠시 감고 있는데 어느 시점부터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배에서부터 엉덩이까지 힘이 들어가다가 잠시 풀렸다가를 반복하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혼자 남아있던 간호사에게 상태를 설명하니 내진을 다시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며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나에게 와서 10cm다 열렸으니 힘주기를 해보자고 하였다. 그때 마침 남편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들어왔고 얼마 안 있어 의사까지 다 모였다. 진짜 출산이 시작된 것이다. 진통 그래프를 보며 확인하는 간호사의 사인에 맞춰 힘 주기를 하였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다리사이에 엄청난 압박감이 들었다가 갑자기 뭔가가 시원하게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간호사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탯줄을 자를 가위를 주고 남편이 탯줄을 자르니 내 가슴 위로 아기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아기가 울었다.


임신 중에 수 없이 이 순간을 상상했었다. 아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겠지? 남편도 옆에서 감격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고생했다고 하겠지? 등등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많은 장면과는 다르게 나와 남편은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좋은 일이 있을 때처럼 우리는 크게 웃으면서 딸을 맞이 했다. 눈물이 날거라 생각했던 내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10달 동안 궁금했던 딸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정말 행복하게 웃었다.


한 참을 웃으면서 딸을 바라보고 있으니 의사와 간호사는 태반과 내 함께 몸에서 나온 이름 모를 것들을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후처치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 낳고 나면 정신이 없어서 안 아프다던데 거짓말이다. 정말 아프다. 마취를 하고 꿰매지만 그래도 아픔이 느껴지는데 아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일 뿐. 그러고 나서 아기 몸무게 키 머리둘레 및 기본 사항들을 확인하기 위해 간호사가 아기를 데리고 가며 나에게 얼음물이나 사과주스 마실래 라며 물었다. 한국에서 있었다면 어른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을 법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간호사가 웃으며 얼음물을 권하였다. 참치 샌드위치도 먹을 건지 물어봤었다. 나는 사과주스를 한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매번 캐나다에서 출산한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면서 나는 얼음물도 다른 주스들도 마시지 않고 따뜻한 물을 마셔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 순간에 사과주스를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준 달달하고 시원한 사과주스는 5cm가 안돼서 힘들게 기다리며 야속하다 생각했던 캐나다 병원을 조금이나마 용서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이렇게 나는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전 12화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