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평생을 나를 쫒아다니겠지.
나는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학교를 휴학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한 요즘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하고 나니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이 것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고 계신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클수록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둘이 지낼 때는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더라도 의미만 대충 통해도 큰 문제없이 지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조금은 겁이 난다. 만약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하고 걷고 그리고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었는데 갑자기 아프거나 학교에서 싸움에 휩쓸린다면 어떤식으로 영어대화를 해야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만약 그런상황이 온다면 외국 영화에서 나오는 정중하지만 쿨하고 의미있는 대화가 아니라 정말 슬프게도 내 아이의 의견만 급급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그래도 해외에서 지금까지 살며 학교를 다닐 정도면 영어를 꽤 잘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나도 한국에 있었을 때는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어를 공부하기보다는 수업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영어는 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영어지식을 돌려 쓰는 기분이다. 그리고 학기가 지날수록 학점 관리나 과제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영어가 급속도로 늘지 않는다. 이건 대다수의 나 같은 유학생들이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같이 수업을 듣는 한국 친구들도 이야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모두가 그런건 아니라 그 중에 현지 아이들과 잘 어울려서 학기가 끝날 무렵엔 원어민 수준처럼 알아듣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 바이 사람.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학생은 아니다.
처음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적어도 딸을 위해 대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필요한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을 만큼 매일 공부해야지 했지만 실상은 맨날 컴퓨터 앞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지금 글을 쓰는 브런치도 그렇고 다양한 포털 사이트에서 한국 소식을 열심히 읽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정말 필요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나의 이런 모습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하하.
나는 막연히 사람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 한 사람의 인격체가 굉장히 달라질 줄 알았다. 엄마는 위대한 존재라는 말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모성애와 부성애를 언급하였기 때문에 아이로 인해 사람이 많이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과정에 놓이게 되니 나는 그냥 나였다. 바뀌는 것도 크게 없고 딱히 더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최근엔 평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던 엄마가 된다는 것이 참 어려운 과정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는 것 정도일 뿐. 사람은 바뀌는 게 아니라 평생을 노력하며 사는 것이라는 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말이 정말 와 닿는다.
요즘은 아기 태동이 매일 느껴진다. 참으로 신기하다. 22주 차의 아기는 30cm 정도 되는데 이 만한 아기가 내 뱃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엄마가 된다는 게 신비로운 것이구나 싶다. 아기는 뱃속에서 매일매일 잘 자라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