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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l 16. 2020

하이, 캠핑장 가다!

강아지와 함께한 캠핑


딸이 어느덧 생후 6개월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훌쩍 자랐나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쓰던 기저귀가 작아져서 2단계를 쓴 지 얼마 된 거 같지 않은데 벌써 또 작아지다니. 지난달만 해도 멈멈을 주면 먹기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한 개 손에 쥐어주면 어느새 다 먹고 또 달라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신기해. 딸이 쑥쑥 자라듯 하이도 같이 커가는 게 느껴진다. 하이는 애교도 많고 사람 옆을 좋아하는 강아지인데 언제부터인가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남편과 내가 쏟던 사랑이 본인이 아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아기에게 뺏긴 걸 아는 건지 아기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늘어난 하이. 남편도 그 모습이 짠했는지 하이랑 최대한 많이 시간을 보내려고 이것저것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때 마침 캠핑장에 초대를 받았다. 이때다 싶어 강아지도 같이 가도 될지 물어보니 흔쾌히 오케이! 우리가 초대받은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캘거리에서 차로 1시간이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시발드 레이크 캠핑 그라운드였다. 처음에 여기 이름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시발드라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는데 욕이 어디서 들리는 것 같았다. 


6개월 아기와 강아지를 함께 데리고 어딜 간다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다. 먼저 아기가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 끓인 물, 분유와 젖병, 여분의 옷, 기저귀, 물티슈,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 상비약 등을 정리한 뒤 가방에 차곡차곡 쌓는다. 그리고 이어서 강아지 물통, 사료, 간식 그리고 배변 비닐까지. 이렇게 준비를 하고 나면 진이 쏙 빠지는데 이럴 땐 잠시 5초 정도 '가지 말까?' 싶다가도 이미 나가는걸 눈치챈 하이가 좋아하는 걸 보고 있으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아이와 강아지 짐을 챙기고 나면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 남편과 나의 바람막이 모자 그리고 가면서 마실 시원한 커피! 나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는 얼죽아인 반면 남편은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같이 살고 있는지 문득 인생이 참 재밌다.  


그 사이 남편은 팬트리에 정리해둔 생수, 아기 유모차, 아기 카시트를 차에 설치하고 하이 안전벨트까지 설치 완료했다. 하루 자고 오는 것도 아닌 데 가기 전부터 짐이 한가득인 차를 보고 있으니 어디 멀리 갈 생각이 싹 사라진다. 그렇게 차에 모두 앉았는데 문득 의자를 빼먹은 게 생각난 남편은 다시 차에 내려서 들고 나왔다. 트렁크에 의자까지 들어간 걸 확인한 후 출발! 날씨도 정말 좋고 시원한 바람에 커피까지 마시니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타운을 벗어나 기분이 좋았다. 매일 아기에 묶여 집에만 있던 나에게 캠핑장을 가는 게 작은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아기도 컨디션이 좋았는지 보채지도 않았고 하이도 어딜 간다는 게 좋았는지 차에서 평소보다 차분하게 앉아있었다. 하이는 차에 타는 걸 무서워했다. 정말 아기 때는 안 그랬는데 작년부터 갑자기 차에 타고 있으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숨을 헐떡였는데 차를 타면 즐거운 곳을 간다는 걸 많이 인지하게 해 줘서 그런가 요즘은 옛날만큼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100%는 아니지만 최근 좋아지는 게 눈에 좀 보이니까 마음이 한결 기쁘다. 이 이야기는 따로 한번 정리해서 글로 남길 생각이다. 


캘거리에서 밴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발드 레이크 캠핑장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밴프 가는 길의 풍경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좀 더 넓은 벌판이 많고 뾰족한데 낮은 키의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있는 곳이었다. 하이는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이 나타나면서부터 불안해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뒷좌석엔 카시트에 타서 곤히 잠든 아기, 그리고 차에 타서 불안한 하이 그리고 무서워하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 나까지 해서 셋이 나란히 타고 있었다. 하이는 차를 타고 어딜 가면 한 번씩 너무 심하게 헐떡이며 우는 시점이 있다. 그러면 안전벨트를 뒷좌석으로 옮기거나 잠시 풀어서 내 무릎에 앉게 해 준다. 그러면 정말 거짓말처럼 차분해지는데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차로 하이와 함께 다니려고 하는 것이 욕심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남편은 딸이 조금 더 크면 이렇게 넷이 로드 트립을 하고 싶어 하는데 하이가 무서워하는 걸 볼 때마다 하이와 함께 못하면 어떡하지 하며 안쓰러워한다. 그때까지 열심히 하이에게 차를 타면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서 괜찮다는 걸 많이 느끼게 해 주고 좋아지게 해주고 싶다. 사람이 좀 더 많이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목적지가 나타났다. 산 중턱에 위치 한 시발드 레이크 캠핑장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프라이빗하게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자리가 정리되어있었다. 확실히 높은 지대라 그런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콧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내 머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하이는 깊은 숲 속이라 그런지 처음엔 무서워했다. 강아지가 조금 낯설어하며 무서워하는 걸 보니 내가 괜히 데리고 온건가 싶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금세 익숙한 듯 즐거워했다.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며 웃었던 시간이었다. 불 앞에 앉아 불멍을 하며 하이를 안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참고로 캐나다의 여름은 해가 무척이나 긴데 밤 10시 정도 돼야 어둑해진다, 우리는 다 같이 산책을 하였다. 하이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걸어 다니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다 보니 남편이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아침저녁으로는 꼭 산책을 함께 하고 내가 오후에 날이 좋으면 아기와 함께 산책을 같이 한다. 새로운 장소라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캠핑장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많이 걸었다. 캠핑장 옆에 작은 호수가 있어 그곳까지 걸으며 하이의 캠핑 나드리는 정점을 찍었다. 하이는 산책을 할 때 좋으면 깽깽이를 하는데 호수까지 가는 동안 깽깽이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길 잘했다 그리고 평소 못해주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아지도 아기 못지않게 손이 많이 가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훌쩍 더 성장하는 게 보인다. 아기를 키우면 어른이 자란다고 하는데 강아지와 같이 지내면서도 그 감정이 생기는걸 요즘 많이 느낀다. 다행히 하이는 쫄보 중에 쫄보에다 사나운 강아지가 아니라 아기와 함께 지내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없고 장난이 좀 많은 게 문제였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많이 어른스러워진 것이 느껴져 괜히 미안하기도 하다. 


산책 후 캠핑장 한편에 '앉아'하고 있는 하이 :)



마지막으로 한 캠핑이 남편과 나밖에 없었는데 딸이 태어나고 처음 하는 캠핑에 하이가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딸이 조금 더 크면 하이와 함께 이렇게 다닐 생각을 하니 그 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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