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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따 Oct 18. 2021

신부의 결혼식의 '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결혼식에서 입는 긴 치마가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신부는 거의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걸을 수 있다. 예식 전까지 신부 대기실에서 앉아 있다가 신부 입장할 때는 아버지 손을 잡고 남편에게로 이양된다. 드레스는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의 상징일 수 있지만, 내게는 수동성의 상징이었다.


요즘은 물론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지 않고 신랑과 함께 서서 하객들을 맞아하는 문화도 많이 늘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전달되는 듯한 메시지가 싫어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하기도 한다. 내가 긴 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예식장에서 혼자서도 잘 걷는 신부이고 싶어서였다. 신부는 결혼식의 '꽃'이 아니라 신랑과 함께 결혼식을 주최하는 '호스트'이다. 생일 파티를 연다고 생각하면 생일 당사자가 손님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하고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는데,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지만 결국 나는 저 위에서 말하는 수동적인 세레모니를 모두 수행하였다. 가성비 패키지를 선택해 긴 드레스를 입고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입장하였으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해서 남편의 손으로 바꿔잡았다. 막상 드레스를 입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불편했다!! 특히 나는 화장실을 엄청 자주 가고 싶어하는데 새벽부터 오전 내내 드레스를 입고 화장실 가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엄청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이모님을 만나서 여러 꿀팁을 얻을 수 있었다. 물은 거의 입술만 적실 정도로 조금만 마실것.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더 가고 싶으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것. 그래도 못 참겠으면 도와줄테니 말씀하라고 하셨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건 아빠를 서운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결혼식을 준비하다보니 결혼 당사자들만큼이나 부모님들께도 자녀들의 결혼이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물론 신랑과 신부가 주도권을 잃지 않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이에 대해서는 또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부모님들이 원하시는 것도 최대한 반영해드리고 싶었다. 아빠와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대기하며 서있는데 아빠가 손을 엄청 떠셨다. 그러면서 나보고 떨지 말라고 하셨다. 나중에 본식 스냅을 받아보니 아빠가 정말 환하게 웃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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