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지식과 지혜
아이와 함께 ‘늙은 어머니의 지혜’ 라는 전례동화 그림책이 있다. 제목은 출판사마다 틀리지만, 모두 아는 전례동화다. 옛날에 임금님이 노인을 모두 깊은 산에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떤 마을의 효자가 노모를 버리지 못하고, 숨겼다. 중국에서 사신이 와서 임금님에게 어려운 문제 세 개를 내었는데, 임금님과 신하들은 풀 수 없었다. 그래서 전국에 방을 붙여, 문제를 풀 사람을 찾았고, 효자가 그 문제를 노모에게 이야기하니 노모가 바로 풀었다. 효자는 임금님에게 답을 알렸고, 덕분에 문제를 푼 임금님은 너무 기뻐하며, 효자에게 원하는 상을 물었다. 효자는 문제를 푼 사람은 자신의 노모임을 말하고, 노모와 살게 해달라고 했고, 임금님은 노인을 버리라는 명령을 취소하고, 효자에게는 큰 상을 내렸다. 이런 이야기이다.
언론을 보면, 세대 갈등이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노령 세대, 기성 세대, MZ세대…… 세대에 이름을 붙이고,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갈등이 정말 있다면, 가장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이 변화에서 ‘계층의 상향 이동’, ‘계층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지식’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져 온 것 같다. 물론 이 믿음이 교육열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빠른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지식의 가치’를 너무 높여 놓은 결과가 지금의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지금은 지식을 윗세대로 부터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받는 시대가 되었다. 윗세대가 후대에 말, 또는 글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여도, 인터넷은 그 과정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윗세대의 의견은 ‘잔소리’로 치부되고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공부만 잘하면, 어른의 말을 안 들어도 용서되고, 공부를 못하면, 똑같은 잘못을 하여도 더 야단맞는’ 학창시절을 경험한 이들이 ‘인터넷보다 적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윗세대를 존중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윗세대들이 보기에는, 본인 세대들의 피땀어린 노동으로 이룩한 경제발전의 혜택과, 역시 본인 세대의 희생으로 ‘공부’를 한 다음세대가 본인 세대를 존중하지 않음을 느끼고, 서운해 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이 해답을 이 전례동화에서 찾으면 어떨까? 윗세대가 다음세대에게 이어줄 수(혹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임을 공감할 수 있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동화에서 노모가 중국사신의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지혜롭기’ 때문이었지, ‘지식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각종 포털의 뉴스란을 채우는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는 원인 역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지혜가 부족해서’인 경우가 훨씬 많다. 가까운 미래에는(어쩌면 이미), 지식은 AI의 저장소에 다 들어있고, 내가 필요한 지식은 AI가 언제나 쉽고 빠르게 검색해줄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아닐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 역시, ‘지식에 의한 답변’이 아니라, ‘지혜에서 이어지는 답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늦기전에, ‘지식보다 지혜’가 더 가치로움을 공감한다면. 그리고 윗세대는 다음세대에게 ‘지혜’를 이어주고, 다음세대도 윗세대로부터 지식이 아닌,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면. 세대간의 갈등을, 세대간의 이어짐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