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누가 공정한 가격을 결정할 수 있을까?
나는 특이한(?) 비누를 산 지 10년이 넘었다. 거의 15년쯤 된 것 같다. 시작은 우연히 받은 전화 한 통이었다.
15년 전쯤, 모르는 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았다. ‘저희는 장애인들이 만든 기업인데요, 추석선물로 저희 제품을 사주시지 않겠어요?’ ‘제가 장애인들이 만든 회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저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장애인 등록증이랑, 회사 관련 자료, 그리고 상품 리스트를 보내드릴게요.’ 얼마 후, 도톰한 편지봉투가 배달되었고, 그 안에는 장애인 등록증 사본들과 제품리스트, 회사 소개자료, 그리고 손편지가 들어있었다.
난 지하철에서 몸이 불편해 보이는 이, 혹은 아이가 껌을 팔면, 바로 사주는 편이다. 그 순간 이 사람이(이 아이가) 진짜일까? 또는 이 사람 뒤에 불법적인(?) 집단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그냥 바로 사는 편이다. 천 원 ~ 이천 원 사이의 금액은 직장생활을 하는 내게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 아니기에 쉽게 지갑을 연다. 하지만, 이 장애인기업의 상품들은 금액대가 있었다. 제일 저렴한 것이 천연비누(5개 6만 원)이었고, 그 외에는 꿀, 공예초, 한차, 공예 필통 등이 있었는데, 비누보다 비쌌고,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나름 이 회사가 정말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회사인지 확인을 한 후, 비누를 주문했다. 5개 6만 원이면, 비누치고는 비싼 가격이었으나, 비누야 항상 사용하는 것이니까, 다른 상품에 비하여 부담이 없었다.
설이 다가왔을 때, 다시 전화가 왔고, 역시 비누를 주문했다. 그 이후 5년 정도는 추석과 설이 다가오면, 전화가 왔고, 항상 비누를 주문했다. 5년 정도 지났을 때, 5월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제품 판매가 안 돼서, 부탁드린다며, 구매를 요청하였고, 역시 비누를 구매했다. 다시 3년 정도 지났을 때, 11월쯤 전화가 와서, 구매를 부탁했고, 그 이후에는 매년 4번쯤 비누를 샀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반년쯤 지났을 때, 장애인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이미 구매한 비누도 아직 쌓여있어서, 그냥 후원금으로 얼마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거절당했다. ‘저희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만들어놓은 제품들이 안 팔리도 쌓여있어서, 일을 못하고 있어요. 후원금이 아니라, 제품 구매를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후원금을 이야기한 것이 왠지 미안해져서, 다시 비누를 구매했다.
며칠 전, 장애인기업에서 전화가 왔고, 회의 중이라 받지 못했더니, 문자메시지가 왔다. ‘추석인데, 일거리가 없어서, 공장이 제대로 운영이 안 되고 있습니다. 도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내용이었다. 집에 와서 욕실 수납장을 보니, 비누가 아직 15개가 남아있었다. ‘그래도 추석인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자메시지로 ‘비누 주문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번까지만 구매할게요. 비누가 집에 많습니다.’라는 답신을 보냈다.
이 장애인기업이 만든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은 제품의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일 것이다. 비누를 예료 들면, 마트에 넘쳐나는 대기업의 제품들에 비하여, 제품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마케팅팀이나 홍보팀이 이 장애인기업에 있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내가 확인한 이 기업의 노동자는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장애인등록증을 가진 이들이었고(몇 분은 중증장애인이었다.), 모두 생산직 직원인 것 같았다. 장애인들이 만드는 수제비누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분들이 투자했을 노력과 시간을 반영한다면, 비누의 가격 (5개 6만 원)은 비싼 가격은 아니다. 그런데, 대기업 비누와 비교 시에는 경쟁력이 없는 가격 임도 분명하다.
제품(상품, 서비스)의 가격은 경제학적으로는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배웠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오른다. 만약 장애인기업의 비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면, 가격은 더 오를 수도 있다. 만약 수요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안 올린다면, 쌓여있는 재고를 다 팔고도 생산량이 부족해서, 공장을 계속 가동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 것 같다. 대기업들이 ESG경영을 표방하며, 환경친화적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제품(?)을 만들고 있고, 이런 상품들은 좀 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팔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런 대기업의 착한 제품(?)을 구매하며, 스스로 지구를 인류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뿌듯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ESG 인증을 받은 상품들을 통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은 대기업일 것이다. 대기업이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냥 현재 사회 구조상 이런 일을 ‘규모’ 있게 하면서, 이윤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대기업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ESG라는 사회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이 장애인기업은 재고가 쌓이는 것을 걱정하며, 지금도 전화를 돌리고 있다. 왜일까? ESG인증을 받지 못해서일까? 흔히 기업에서 말하는, 혁신과,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이나 홍보전략이 필요한 것일까?
상품(제품, 서비스 등)을 구매할 때, 가격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 상품의 효용성’만을 평가하여, 가격을 정하는 것이 공정하며, 지금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상품들은 이러한 가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상품의 가격은 ‘효용성’이 아니라, 사회의 ‘선입관’에 의해 결정된다. 명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방의 효용성은 물건을 담아서 이동할 때, 얼마나 물건을 안전하게 보호하느냐이다. 하지만, 명품 가방의 가격은 ‘명품가방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사회, 정치, 경제적인 위치에 오른 사람이 살 수 있는 가격의 상품으로 사회적 선입관이 형성되어있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다시 장애인기업의 비누로 돌아와서, 장애인기업이 생산하는 비누의 가격을 ‘장애인들이 이 비누를 수제로 만들기 위해서 투여하는 노력(혹은 노동)의 양’을 기준으로 책정한다면, 현재의 가격은 싼 가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의 가격이 싼 가격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서로 비누를 사려고 할 것이고(오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전화를 하며 판매를 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도 지금 당장은 발생할 것 같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부, 공공기관, 아니면 대기업의 역할일 수도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비누를 구매하면서, 장애인기업의 노력에 근거한 가격을 이해하고 구매를 결정하도록, 사회적 선입관이 바뀌는 것이 어렵다면, 정부,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서 사용하는 비누를 전량 장애인 기업에서 사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때, 가격 결정은 입찰을 통해서 결정되어서는 안 되며, 장애인기업의 장애인 노동자가 생산에 투여한 노력에 대한 공정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아마 대기업에서 생산한 비누를 입찰을 통해 구매한 것보다는 훨씬 비싼 가격에 구매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격을, 장애인들이 당당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이를 통해 받은 ‘보수’를 가지고 당당하게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가치’를 위해 지불된 가격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는 저렴한 경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뭘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느냐고.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고. 직장생활 혹은 사회생활은 비장애인들이 효율적으로 하면 되고, 비장애인들이 후원금을 내거나, 세금을 내면, 장애인은 그 후원금 혹은 세금을 받아서, 생활하면 된다고. 혹은 장애인들 스스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고.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사회가 빨리 발전(?)하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 맞다 틀리다를 내가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수학 문제가 아니어서, 누구도 정답을 풀어낼 수는 없으며,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개개인이 본인의 생각을 결정하고, 본인의 삶에 그 결정을 반영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결정이 대다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선거 등의 방법을 통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현재 사회의 규칙이니까. 그러니까, 이들의 의견은 나와는 다른 의견 중 하나이지, 틀린 의견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내 가치관으로는 ‘후원금을 요청하는 장애인 기관’ 보다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장애인 기업’이 더 좋다. 그리고 이 장애인 노동자들이 이 기업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된 삶을 살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이 ESG 인증기업의 제품에 지갑을 여는 만큼, 이런 소규모의 장애인기업 제품에도 지갑을 열었으면 좋겠다.
이번 비누 구매를 올해 마지막 구매로 하겠다고 했지만, 연말에 한 번 더 비누를 구매해야겠다. 잊지 말고 내가 먼저 연락해서 주문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