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솔 Aug 30. 2022

친구란? 친한 사이란?

_ 어쨌거나 우린 친구가 필요하고, 친구를 찾는다.

며칠 전, 거의 3년 만에 친한 사람들과 술 한잔을 했다. 17년 전 한국의 ??대학교에서 MBA를 같이 공부했던 형님들로, 나를 포함해 종 4명이 만났다. 이렇게 모이면, 내가 막내다. (막내인 나도 50이 넘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일하는 업계도 모두 틀리고, 흔히들 말하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 지위’ 등등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이이지만, 같이 MBA를 한 100명 가까운 동기들 중에, 아마 우리 네 사람처럼 꾸준히 편하게 만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더. 코로나 전에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였고, 코로나 중에는 못 만나다가, 3년 만에 만났지만, 우리는 친한 사이이다. 이번에 만나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자기의 삶을 말하며 웃고 떠들다가 헤어졌다.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개인사들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인생은 떨어져 보면 희극이라고.


난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다. 요즘 MZ세대에서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보면, 극단적인 INFP로 나온다. 15년 전쯤 처음 해보고, 그 이후로 세네 번 해본 것 같은데, 할 때마다 INFP는 변함없고, 점수는 점점 더 높아졌다. 하지만, 내 직업은 놀랍게도 영업마케팅이다. 그래서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 영업마케팅이 직업인 사람들은 외향적이라는 선입관에, 나 스스로 ‘외향적인 척하려는 노력’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일 때문에 만났더라도, 10년 이상 만나온 이들은 내가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이제는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이런 사람들을 이제는 ‘친한’ 사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와 친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나에게 ‘왜 그동안 연락 안 했어?’라고 묻지 않는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은 무슨 사건 사고가 난 경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하지 않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 힘든 상황에 처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짐을 그들은 안다. 그래서, 나를 보고, 나에게 처음 하는 말이, ‘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어’이면, 그 사람은 나와 친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며칠 전 만난 MBA 동기는 매우 친한 사이이다. 모인 4명 중 2명은 외향적이고, 나를 포함한 다른 한 명은 내향적이다. 그래서, 우리 모임은 항상 외향적인 사람이 카톡으로 모임을 제안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바로 동의하고, 그래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모여서도, 누가 먼저 연락을 했느니, 누군 연락도 안 하느니 등은 전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냥 모이자마자,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위로도 하고, 웃고 떠들다 헤어진다. 그리고 다음 모임은 뜬금없이 또 누군가가(물론 외향적인 사람이다.) 카톡에 모임을 제안하면, 바로 모인다.


한 업계에 10년 이상 있다 보면, 내가 노력했던, 노력하지 않았던, 업계의 사람들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특히 영업마케팅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비교적 많이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는 사람의 숫자는 많아진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랑 업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 사람 이름이나 중요 고객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어떤 이는 바로, ‘나 그 사람이랑 엄청 친해’라고 자랑하듯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나 같은 사람)은 그냥 ‘나 그 사람 알아’라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친해’와 ‘알아’는 분명히 엄청 다른 의미이지만, 실제 인간관계의 깊이를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친해’라고 말한 관계이지만, 휴대폰 번호도 모르는 경우도 많고, ‘그냥 알아’라고 말한 관계이지만, 생일이면 서로 기프티콘으로 케이크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 ‘친한 사이’는 ‘친해라고 말한 사람 간’일까? 아니면, ‘그냥 알아라고 말한 사람 간’일까?


이런 경우도 있다. A라는 이가, B를 만났을 때에는 나와 매우 친한 사이라며, 나라는 사람의 인간성(?)과 능력에 대하여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A가 C를 만났을 때에는, 나를 잘 알지만, 인간성(?)이나 능력은 부족하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실을 D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E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것 도 알았다. 물론 나는 A, B, C, D, E 모두 ‘아는’ 사람이다. 그럼 이 중에 나와 ‘친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는 나와 친하지 않은 관계이고, 아마도 앞으로 A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직업상 연락할 일은 분명히 생길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반갑게 인사는 하겠지만.


요즘 내 두 딸이 친구관계에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초등학생들에게 친구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분명히 ‘본인 생애에서 처음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해결책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냥, 항상 너희 옆에는 엄마 아빠가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기를 겪으며,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이 시기를 겪으면서, 아이들은 자라는 것일까? 어른인 나도 나랑 ‘친한 관계’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말하는 나로 인해 항상 상처를 받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자라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과정을 통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받은 상처에 무뎌지고, 말로는 친한 사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항상 나 자신을 위한 보호막을 치는 방법을 익혀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