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와 색감에 반하다
베니스가 사랑의 도시로 알려진 것은 라군(석호: 바다와 격리된 호수)으로 이루어진 도시로 운하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곤돌라를 타고 이동하며 찍는 낭만적인 장면은 베니스의 랜드 마크이다
외부의 침략을 피해 라군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물을 관리하는 것은 땅을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보트를 관리해 보면 안다. 보트를 트레일러에 싣고 트럭이나 SUV로 끌고 가서 도킹시키는 일련의 일이 차를 운전하고 가서 주차장에 파킹시키는 것보다 열 배는 어렵다.
해양국가들이 발전한 이유가 이러한 자연과 싸워 물을 다루는 일에 단련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짐을 꾸려 기차역까지 버스와 트램을 타고 내려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무심코 따라가다 광장이 나온다.
'여기가 아닌 가봐'
다시 구글 맵을 꺼내 들고 공중에 대고 사진을 찍어대니 우리가 있는 장소를 찾은 구글이 가야 할 방향으로 화살표를 해준다.
'구글 맵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고마워, 구글'
남편이 여러 가지 앱을 가지고 길 찾기를 전담하였는데 구글 맵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아침에 나오기 전에 볼일을 보고 나오는 일이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주의해야 할 점 중의 하나인 것이 공중화장실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티켓을 사는 동안 잠깐 화장실 다녀온 다고 한 사람이 함흥차사, 내 차례가 돼서 표를 두 장 사려고 하니 혼자 줄 서서 한 장 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을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했는데, 돌아온 남편 왈" 화장실이 1마일 밖에 있어 한참을 걸었다고"
피렌체 기차역에 도착하니 매표소에 줄 서있는 사람들로 건물전체가 꽉 차있다. 번호표를 뽑아서 대기하는 것을 보니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재빨리 <트레니탈리아> 앱을 꺼내는 남편,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해서 기차에 올랐다. 비즈니스 칸에 타고 보니 좀 더 여유롭다.
가죽으로 된 의자와 머리 받침, 간이 책상 겸 식탁이 구비되어 있고 간단한 간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곤돌라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산 마르코 광장을 찾아가는데 건물들에 가려져 구글 맵이 잘 작동하지 않아서 좀 애를 먹었다. 플로렌스의 단일한 색상 두 가지 (테라코타 벽돌색 아니면 옅은 겨자색)에 비해 이곳의 건물은 제 나름의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 해져 있는데, 조화를 이루며 활기찬 분위기로 마음까지 들뜨게 만든다.
운하도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뎠는데 그 정도 냄새가 안 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겠지...
산 마르코 성당까지 도착하기 위해 플로렌스부터 타고 온 이동 수단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먼저 호텔에서 버스와 트램을 타고 플로렌스 기차역에 도착, 기차를 타고 베니스 기차역 도착, 기차역에서 호텔까지 택시로, 다시 버스, 곤돌라를 타고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 그다음에 수상버스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돌아왔으니...
이 정도면 이제 이탈리아 대중교통의 달인이 되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산마르코의 광장에서 본 성당은 여태껏 외부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산 마르코 광장에 비둘기가 많아 지저분하다는 등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오길 정말 잘했다!'
다음날,
호텔 프런트에서 1일 패스(베니스의 모든 대중교통수단: 버스, 수상버스등)를 포함하는 교통 카드를 사서 블로거가 권해준 조그만 도시를 향해 갈 계획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수상버스가 우리를 향해 오자, 갑자기 "저거 타자" 하면서 남편이 그쪽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베니스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해서 무작정 탔는데 <부라노>행이었다.
공짜 해상 투어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림 같은 부라노 섬에 내려 한가로이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 배경으로 인기 있는 지역), 친구가 권해 준 <무라노> 섬에 들러 유리 공예도 구경했다. 이 모든 여정이 1일 패스로 가능했다.
베니스 공화국 또는 베네치아 공화국(이탈리아 - 베네치아)은 전통적으로 라 세레니 시마(세레니 시마 리퍼블리카, "가장 고요한 공화국")로 알려져 있으며, 서기 697년부터 1797년까지 1100년 동안 존재한 현재 이탈리아(주로 북부 이탈리아) 일부의 주권 국가이자 해양 공화국이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이탈리아에서 자본주의가 처음 발전했으며 중세 후기를 지나 유럽 경제를 지배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중세 시대 나머지 중세 유럽의 경제 발전과 통합의 기원으로 간주됩니다. 세계 최초의 실제 국제 금융 중심지로 간주됩니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지리적 위치 덕분에 중동과 유럽 전역의 목적지를 잇는 핵심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상 무역을 통해 부와 권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17세기 암스테르담과 18세기 런던의 상업적 원형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과 비잔틴 제국의 정복으로 수도와 수도가 연결되면서 동쪽과 멀리 아시아로 향하는 무역로가 열렸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무역의 확장을 가져왔고, 베니스는 이를 통해 재정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재정적 이점을 바탕으로 베니스는 오랫동안 무역 국가들 사이에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를 이해하려면 상인의 이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투기꾼, 위험을 감수하고, 우월하고, 경쟁적이며, 때로는 강압적이고, 계산적이고, 비밀스럽고, 검소하고, 동시에 신중합니다. 베니스의 역설은 상인의 역설입니다. 그들은 돈이 안 되는 예술에 관심이 없었고, 세상의 일과 정세에 관심이 없었으며, 전쟁을 문제라기보다는 기회로 여겼습니다. 결국 베네치아는 극도로 부유한 상인 계층의 본거지가 되었고, 이들은 도시의 석호를 따라 유명한 예술품과 건축물을 후원했지만 수익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네치아 르네상스는 일반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나 유럽 르네상스와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베네치아의 고립된 위치 덕분에 시민들은 예술과 다양한 형태를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매우 베네치아적인 방식으로 예술적 표현을 우선시했습니다. 음악은 예술적 풍경의 일부가 되었고 비발디, 마르첼로, 갈루피와 같은 뛰어난 바로크 작곡가들이 도시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와 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은 르네상스 초기에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이들은 표현적인 색채와 빛나는 빛,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을 구현했습니다. 비잔티움에 대한 충성심은 금 모자이크와 성모 마리아의 상징적인 이미지에 대한 지속적인 선호를 촉진했습니다. 향신료와 사치품에 대한 베니스의 성공적인 동양 무역 덕분에 베니스의 예술계는 가장 값비싼 최고급 안료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정보 출처: Odyssey 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