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영 Jul 16. 2020

안온했던 나날을 끝맺자

박성준 <가령의 시인들>

    우리에겐 시 짓는 일보다 약을 지어 먹을 일들이 조금씩 더 많아졌다.


    이렇게 거짓말을 짓는 일들이 슬퍼져갔다.


    박성준, <가령의 시인들>, <<잘 모르는 사이>>, 문학과지성사, 2016.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고 날들은 안온했다.

    詩는 감정으로부터 탈출이라고, 감정이 넘치면 안 된다고, 그래서 시를 쓰지 않았다. 감정을 억제하는 건 자기학대에 가까웠으므로.

    소설은 설계라고, 길을 잃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소설을 쓰지 않았다. 길을 잃을 힘도 없이 주저앉았으므로.

    수필은 사유와 통찰이라고, 산문은 삶을 관통해야 한다고, 그래서 수필을 쓰지 않았다. 삶이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칼로 끊어내는 수밖에 없어 보였으므로.


    지금 이 글은 시일까, 소설일까, 수필일까. 지금 쓰는 글은 그 무엇도 아니어서 가능한 거짓말일까?

    시를 쓰기 위해선 매번 감정을 죽여야 했고, 우울약이 필요했다.

    소설 쓰기는 비계(飛階)를 만들어 주었으나 지면에 닿지 않는 발은 매 걸음이 허공이고 공허임을 직시할 뿐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매 순간이 고비임은 광활한 평야에서 눈을 감고 걷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으므로 통찰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예언자는 될 수 없는 운명.


    지금 쓰는 글은 삶을 겉핥는 방식. 아니, 실은 그마저도 아닌 변명. 거짓된 삶은 진실 되게 기록해도 거짓이므로 이 글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썼기에 지금 삶이 거짓됨을 깨달았지.

    나를 타자(他者)로 세우고, 그로부터 한 발짝, 한 발짝 멀어진다. 주저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일어선 힘으로 감정을 공꽁 응축해서 화살 한 발을 쏘아야지. 나는, 혹은 너는, 나의 정신(精神)이 꿰뚫을 삶의 과녁.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고 그 날들은 안온했다. (2020.07.12.)




이전 10화 푸른 밤 함께 있고 싶은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