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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Jul 22. 2020

천사처럼 와서 악마처럼 우는 당신

송승언 <취재원>

    나간다 비상구의 빛으로 악령처럼

    따라오는 너라 생각하지만

    착각이었지 돌아보면 너는 언제나 밝은 낮이었다



    송승언, <밝은 성>, <<철과 오크>>, 문학과지성사, 2015.




    우리들 함께한 추억은 나쁘다. 너희들과 함께한 모든 기억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악으로 구른다.

    그 굴레에 불가항력으로 올라타 쳇바퀴처럼 돌았다. 하나하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어째선지 눈물이 차갑게 흐르고,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은 바람을 맞으며 몸을 으슬으슬 떨게 한다.

    추웠는데, 추웠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가슴에 고인 젖처럼 추억은 출렁출렁 흔들렸는데, 이제는 젖었던 그때 그 감정이 증발해가고 메말라가는 소리 부글부글. 순도 높은 추억은 끈적거리게 엉기고 굳어갔다.

    최후에는 무엇으로 굳을까.


    우리들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 없이도 계속될 수 있더라. "세상은 너 하나쯤 없이도 잘 돌아가는 거지. 하지만 네가 분명 존재한다면, 네가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는 세상이잖아?" 실상은, 그 누구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있어도 없는 사람. 내 세상은 내가 중요하지 않았어, 너희가 전부였다.

    남의 비위에 맞춰 사는 내가 싫지 않았다. 너희들이 내 삶의 전부였고, 나를 소속한 너희가 사라지면 나는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래, 그래도 우리는 공생 관계인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니? 내가 없으면 너희는 아파할 줄 알았다. 헤어짐을 고하면 너희는 마음이 아파서 나를 붙잡아줄 줄 알았다.

    아픔은 찰나였다. 아픔을 참고 너희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래, 우리는 공생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너희에게 기생했다. 나만 몰랐던 사실. 내가 너희들의 암세포였다는 것을.


    지쳐버린 나는 발 구르기를 멈춘 지 오래, 하지만 악의 굴레는 구르던 관성으로 계속 돌고 있다.


    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 꿈속에서 우리 다시 함께했을 때, 잠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는데, 눈을 뜨고 말았지. 나는 누운 채로 허공에 손을 뻗고 있었어,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서. 손 안에 뭐가 있는 느낌은 없었다. 손을 펼쳐봤고, 역시 아무것도 없었는데, 손을 너무 꽉 쥔 나머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나 있었어.

    꿈은 기억해내지 못해서 다시 잠을 청했어. 가슴 속 응고되던 추억은 어쩐지, 두부처럼 몽글했어.


    *


    꿈은 이러했다, 그대여. 당신이 그들을 다시 놓치기 싫어 그들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들은 잡을 수 없는 푸른 장미여서 당신은 가시에 손을 찔렸다. 당신은 너무 아팠지만 그들을 한 아름 안았다. 푸른 장미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었는데, 가시에 찔린 당신 손에 꽃잎이 붉게 물들지 않았다.

    당신 손에는 피 대신 빛이 흘렀다.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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