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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Oct 19. 2021

망령의 계보에는 오해가 있다

박연준 <꽃을 사육하는 아버지>

 나를 놓으세요 십자가를 놓으세요

 딸이 죽어요, 아빠를 밟은 채 죽어가요


- 박연준, <꽃을 사육하는 아버지>,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창비, 2007.



    십자가 목걸이를 걸치고 염불을 외는 아비는 망령된 딸을 물리치기 위해 종교대통합을 이룩하신다. 망령이 계속 아비의 꿈속에서 나타난다.

    아버지,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아버지, 딸을 먼저 보낸 마음이 어떠신가요. 비참하시지요? 저도 슬프답니다. 저도 비참하답니다. 우리가 죽어서도 함께인 이유입니다.     


    아비야 두렵느냐, 아비야 네 딸이 두렵느냐? 오죽하면 죽은 딸을 반가워하지 않을까…….     


    *     


    내가 죽는다면 저승을 갈까 이승을 맴돌까.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저승으로 내려가야겠지. ……그렇지만, 바로 내려가진 말아야지……. 절벽에서 나를 밀친 친애하는 사람아, 너의 악몽으로, 난 살아가야지…….     


    그건 사고였다. 자욱한 안개에 그 녀석이 절벽에서 발을 헛디뎠던 거다. 그 녀석은 발에 망령이 들었다. 하루는 이랬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교내 작은 마라톤 대회 도중 넘어졌는데, 무릎이 심하게 까졌고 절뚝절뚝 늦게 완주해서 참가상도 못 받았다고. 누가 뒤에서 밀쳤다고 넘어졌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저 혼자 낙엽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졌다지? 하지만 그 녀석은 끝까지 누군가 자기를 민 것이라, 그렇게 믿었다.

    또 하루는, 성인이 되어서 동해안 바닷가에 발만 담갔는데 바닥이 푹, 꺼졌다지? 그때도 누가 밀었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놈한테 말했지,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 이번에 넌 어떻게 말할 거니. 저 혼자 실족하고는 내 탓을 할 거니? 네가 정말 무섭다.     


    *     


    아버지 아십니까, 아버지께선 십자가를 들고 염불을 외었지만, 망령된 딸도 십자가를 들고 외었어요. 망령된 딸에게 붙은 망령을 물리치기 위해서. 망령의 망령이 또 그러하고, 망령의 망령의 망령이 또 그러하고…….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딸을 물리치려는 아비여, 당신도 지금 망령이외다.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딸에게 못되게 구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떠합니까. 당신이 망령이고, 당신의 아비가 망령이며, 또 그 아비가 망령이며…… 그 끝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면 어떠합니까. 그러나 이제는, 당신의 손녀 그러니까, 당신 딸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이 망령이고, 그 딸이 망령이 될 것이고, 또 태어날 딸이 망령이며, 딸의 딸의 딸의……. 아아― 이제는 어머니들이 슬픈 존재인 이유.     


    *     


    그 녀석, 나를 분명 미워하겠지. 내가 거짓말쟁이로 취급했으니. 너를 실족시킨 망령이 누구니. 묻고 싶다, 혹시 그게 나냐고. 낙엽을 밟고 미끄러졌을 때, 얕은 바다에 빠졌을 때, 너 혼자 빠진 게 사실이라 내가 굳게 믿은 것처럼, 네게는 너를 밀친 누군가의 존재가 실재하였겠다. (20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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