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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Sep 30. 2021

별 헤는 밤중의 참회록

조은 <옆 발자국>

 소멸의 모서리에

 탄생의 순간 같은

 힘이 쏠린다


- 조은, <모서리 빛>, <<옆 발자국>>, 문학과지성사, 2018.



    언제까지 구석으로 몰려야 당신에게서 몸을 피할 수 있는 것인지… 언제 당신의 손이 나를 만지지 못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나의 몸을 움츠러듭니다. 머리를 숙여 목을 가리고, 팔을 접어 손목을 가리고, 무릎을 굽혀 발목을 가리고…… 어떤 목이든 가리고 싶습니다.     


    나의 온몸이 구겨지면, 당신의 몸은 펼쳐집니다. 당신은 어쩜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자라납니까. 목이 길어집니까. 손목이 두꺼워집니까. 발목이 튼튼해집니까.

    당신이 나를 괴롭게 하는데 왜 내가 부끄러워지는지요. 그러나 내 몸을 지키는 길은 내 삶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차라리 더 작아져서 구석의 쥐구멍으로 들어가 숨고 싶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님, 당신은 어찌 부끄러움으로 시대에 저항할 수 있으셨는지요. 당신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에는 치즈가 녹습니다. 퐁듀, 한 조각의 빵을 적셔 먹고 싶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당신에게처럼 별 헤는 밤이 허락된다면……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내가 있습니다. 쥐구멍에도 볕이 들까요.     


    당신에게 언제쯤 팔을 뻗을 수 있을까요.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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