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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진로] 14. 화학공학, 신소재공학

인공지능 진로 Part-2

by 코딩하는 수학쌤


화학공학, 신소재공학


진로지도를 하다 보면 화학과와 화학공학의 차이점을 물어보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우스갯소리로 ‘스포이드로 실험을 하면 화학과, 드럼통으로 부으면 화학공학과’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화학과와 화학공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두 학과는 목적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화학과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는 물질 상태의 변화,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데 필요한 기초 학문을 다룹니다. 반면 화학공학은 화학에서 연구되어 있는 성질을 기초로 실생활에 응용을 하는 공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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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욱 한국 에너지 연구원은 알기 쉽고 재미있게 이 두 학과의 관계를 치킨 생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화학과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두 친구가 치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화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해 다양한 식재료를 혼합하고, 닭고기의 표면 구조를 분석하여 양념이 잘 배어드는 처리 방법을 개발합니다. 치킨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재료를 분석하여 최고의 치킨 레시피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각각의 양념의 특징들을 정리합니다.

반면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화학과 친구가 개발한 레시피에 따라 공장을 운영하고 설계합니다. 닭고기를 포함한 식재료를 조리에 적합하게 다듬어지도록 가공 공정을 설계하고 재료의 성질에 따라 보관 기한과 방법을 설정합니다. 하루에 필요한 만큼 치킨을 튀길 수 있는 튀김기를 설계 및 가공하고, 튀김기의 기름에 열이 잘 전달되는지를 측정하며, 생산량이 갑자기 늘어날 때 일어나는 상황을 살펴보며 공정 전체 과정을 조율합니다. 따라서 화학공학에서는 화학에 대한 이론도 공부하지만 기계에 대한 이해, 유체역학이나 에너지 등에 따른 물리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화학공학은 공학적인 효율을 매우 중시하는 학문입니다.


화학공학에 포함된 ‘화학’이라는 용어 때문에 화학공학을 화학 또는 화학 공정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밀하게 보자면 화학공학의 영어 표현인 Chemical Engineering의 Chemical은 ‘물질’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화학공학은 물질이 이송되거나 혼합, 분리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 에너지 등을 모두 다루기 때문에 물리, 화학, 생명과학 등의 지식이 모두 사용됩니다. 화학공학에서는 주로 화학반응에서 나타나는 물질의 변화를 살피는 과정에서 물리적 지식을 많이 활용하고 공정의 효율성을 살펴볼 때는 수학도 많이 사용합니다. ‘화학=화학공학'이라는 생각으로 화학공학과를 진학한 학생들은 전공 수업에서 쏟아지는 물리, 수학 때문에 소위 멘붕에 빠지기도 합니다.


화학 공학은 인류의 삶을 가장 획기적으로 바꾼 학문 중 하나입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9세기 말 세계의 인구는 약 15억 명으로 증가했지만 농업 생산성은 크게 증가하지 않아 식량난을 맞이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데 성공하고 농사에 화학 비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식량의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석유 화학도 인류의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원유를 가공해 가솔린, 디젤 등 산업이나 교통에 필요한 연료를 가공해냈습니다. 또한 나일론, 아크릴 수지, 합성고무 등도 생산해냈고 섬유 산업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만약 석유화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1년 내내 면이나 양모 같은 천연 섬유로 이루어진 옷들 외에는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겨울에는 가죽옷과 털 옷, 목화솜으로 만들어진 옷만 입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죠. 플라스틱도 사라지고, 자동차나 비행기에 사용되는 합성 타이어도 사라집니다. 학용품을 비롯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제품에는 화학공학의 손길이 다 닿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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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공학의 세부 분야인 화공생명공학에서도 최근 신물질 개발과 분자생물학 등에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명과학에서 다루는 DNA, 단백질 등과 같은 물질이 모두 화학 분자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피 한 방울로 당뇨를 비롯한 다양한 생체 및 유전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화학공학의 힘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5월 KAIST 전자공학과 권경하 교수팀과 화학공학과 김종옥 연구원은 혈액 대신 땀을 이용해 체내 포도당을 비롯한 정보를 얻는 전자 패치를 개발하였습니다. 유전자 치료 개발, 인공 장기 개발, 식품 산업, 나도 메디컬 등이 모두 화공생명공학의 연구 분야입니다.


화학 공학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소재 개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2018년 영국의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의 대니얼 데이비스 교수는 Nature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신소재 개발에서 머신러닝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머신러닝은 번역, 자율주행, 추천 서비스 등에 주로 활용되어 왔지만 앞으로 다양한 화학 기호와 원소들의 관계성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물질의 합성은 직관과 우연, 무수한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화학 지식을 학습한 머신러닝이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비록 아직은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연구를 생각하고 주도하는 단계는 아니며 화학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적용된 것도 최근이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것 또한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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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KAIST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숨겨진 소재를 탐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무기 화합물은 가능한 모든 조성과 결정구조에 대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경우를 하나하나 탐색하기가 어렵습니다. 생명화학공학과 정유성 교수팀은 이미 합성이 보고된 5만 여종에 달하는 물질과 8만 여종의 가상 물질로 이루어진 ‘Materials Project’ 소재 관련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 그래프 합성곱 신경망(GCN, Graph Convolutional Neural Network)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정유성 교수는 "광촉매 물질의 설계에 적용한 이번 소재 설계 프레임워크는 화합물의 화학적 조성뿐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특정 물성을 갖는 소재를 역설계하는데 적용이 가능하다ˮ면서 "여러 소재 응용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ˮ고 말했습니다. 연구팀은 신기술을 적용한 결과 소재들의 합성 가능성을 87%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으며, 이미 합성된 소재들의 열역학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열역학적 안정성 만으로는 실제 소재의 합성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전력 수요의 예측, 배터리의 수명 및 충전 상태 등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빌딩, 공장 전력 관리에 적용해서 에너지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사용량을 예측하며 제어함으로써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제어합니다. 이미 구글의 딥마인드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에너지 소비를 30% 절감했고 다양한 기업에서 생산 공정 및 기업 환경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2021년 7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공지능 연계 에너지 기술 포럼’에서는 인공지능을 적용한 에너지 기술의 다양한 연구 사례가 발표되었습니다. 일사량과 태양광 발전량 계산에서 머신러닝을 적용하여 발전량을 예측하기도 하고,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센서를 부착하여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설비의 이상을 미리 진단하기도 합니다.


친환경적으로 에너지의 생산량을 높이고 효율화를 이루는 것은 마치 화학공학이 농업 부분에서 생산량 혁명을 일으켰던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제입니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 정확한 수요 예측에 따른 생산의 효율성의 추구도 생산량을 늘리는 것과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화학공학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또 하나의 삶의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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