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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by 유수 Nov 05. 2024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셰어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날. 5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사소하고도 대수로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방을 비운 사람은 효성이었다. 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재혁과 동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들의 아린 사연을 알고 있던 민지와 윤서는 별말을 하진 않았다. 언젠가 효성의 민망함이 사라질 때 즈음, 전말을 알게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민지가 이사를 갔다. 졸업까지 방을 내어주겠다는 집주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민지는 셰어하우스에서 나와 자취방을 구했다. 오롯이 학업에만 집중하겠다는 그녀만의 다짐이었다. 게다가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에 4명의 새로운 하우스메이트를 맞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민지는 혼자 살 수 있는 원룸을 구했다. 세 번째는 지은이었다. 지은은 방이 두 개 딸린 아파트를 구해 성인이 된 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지은은 취업 준비생으로, 동생은 대학교 새내기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월세는 아버지가 부담했지만, 셰어하우스 때보다 올라간 금액에 지은의 마음은 조금 급해졌다. 신애는 짐을 싸들고 곧장 본가로 향했다. 그녀는 안식 기간을 갖기로 했다. 그 꾸준함으로 일궈낸 수석졸업에 대한 보상이었다. 나머지 4명의 여자들은 수석졸업 보다, 부유한 집안 덕에 취업 준비를 미룰 수 있는 신애의 여유를 부러워했다. 


셰어하우스의 마지막 문을 닫게 된 사람은 윤서였다. 그 탓에 그녀는 집주인과의 남은 보증금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평소 간섭이 없던 집주인은 하우스메이트들이 방을 빼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집요할 정도로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흠집 하나라도 발견되면 보증금을 차감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결국, 효성의 방 창문틀에서 그을린 자국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담배자국이었던 것 같다.) 윤서는 긴 사정 끝에 창틀을 교체하는 대신 새로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집주인을 설득해 냈고, 보증금은 거의 원금만큼 상환되었다.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윤서는 민지와 마찬가지로 홀로 자취방을 구했다. 사실 하숙집에 가까웠다. 그녀는 한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의 빈방을 계약했다. 이전 셰어하우스에서만큼 방은 비좁았지만, 새 출발을 위한 전략적 투자였다. 이제 민지와 신애를 제외한 하우스메이트들에게 남은 과제는 바로 취직이었다. 그들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대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거절을 당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날 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헤어질 당시 흘렸던 눈물은 나쁜 기억을 씻어내면서 좋은 추억의 거름이 되었다. 하우스메이트들의 사이는 되려 셰어하우스를 떠났을 때 더욱 돈독해졌다. 


민지와 신애도 마찬가지 었다. 홀로 학업에 매진할 민지를 위해 하우스메이트들은 주기적으로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신애도 휴식이 지겨워질 때, 그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 시간은 훌쩍 지나 민지는 졸업을 확정받았지만, 졸업식까지 기간이 반년 남짓 남아 민지도 취업 준비에 나섰다. 그 사이 효성은 명품 매장의 직원으로 취직에 성공했다. 그 후, 윤서가 투어 가이드로 일을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효성과 윤서는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다. 무엇이든 할 수만 있다면, 돈을 준다면,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민지의 졸업식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지은은 디자인학원의 교사가 되었다. 그나마 전공에 가장 가까운 일이라며 출근을 결심한 지은은, 자신의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 속, 목에 메달을 걸고 있는 지은의 모습에 하우스메이트들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은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주말에는 사이클 경기에 출전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셰어하우스를 떠난 지 약 1년 만에 신애는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입사했다. 그녀의 소식에 현실의 쓴맛을 느낀 이들이 몇몇 있었지만, 모두 진심을 담아 축하를 보냈다. 민지는 졸업식을 앞두고 파티플래너로 취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는 시기와 졸업식이 겹치는 바람에 학사모와 가운은 포기해야 했다. 하우스메이트들은 안타까워했지만, 민지는 되려 안심이었다. 졸업이 늦어진 게 썩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우스메이트들이 다시 모일 기회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효성은 잠시 잊고 있던 사람에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통 연락이 없던 터라 서운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한 마음에 응답을 할지도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효성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잘 지내?" 그녀의 인사에 살짝 긴장이라도 한 듯,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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