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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현명한 사람인가요?

인생에서 현명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by 이고경

첫 회사의 구조조정, 이직. 두 번째 회사의 희망퇴직, 그리고 서비스 종료. 취업 후 고작 삼 년 동안, 나는 끝이라고 생각한 것들의 끝을 여러 번 보았다. 매번 처음처럼 아팠고 점점은 무뎌지는 줄 알았지만 어느 날 또 다시 울컥했다. 상실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잃으면 당연히 슬퍼하고, 분노하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인지 지난 삼 년간, 많은 사람들의 상실과 그 대처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버럭 화를 냈고, 어떤 사람은 웃다가 눈물을 쏟았다. 스스로를 ‘참 힘든 인생’이라 자조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한참을 모니터만 바라보던 사람도 있었다. 나는 유독, 그 ‘아무 말 없이 조용한 사람들’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은 게 아니다. 불안했고, 억울했고,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라는 한 마디로 생각을 정리했다. 가벼운 말처럼 들렸지만, 그 안엔 묵직한 수많은 감정이 접혀 있었다. 그 말 안에서 아주 조용한 용기와 마주했다. ‘이게 현명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우리는 흔히 안정이 최고의 가치인 듯 살아간다. 번듯한 직장, 꾸준한 수입, 오래된 친구, 평온한 하루.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은 확률의 문제일 뿐,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뻔한 문장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닥 위에서 우리는 그저 균형을 잡으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굴곡을 인정하되 거기에 눌려 주저앉지 않는 것.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방법을 찾아 다시 나아가는 것. 현명함이란 그런 태도 아닐까.



연휴 내내 미뤄두었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드디어 끝까지 봤다. 몇몇 장면에선 어찌나 오열했는지, 눈이 퉁퉁 부어버릴 지경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애순이와 관식이는 유채꽃밭을 거닐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햇살 좋던 그날의 대화는 따뜻했고 희망찼지만, 그들이 걸어온 삶을 돌아보면 말한 꿈들 중 단 하나만이 이루어졌다. 그토록 많던 바람 중에 단 하나뿐이라니. 그 순간, 화면은 더 이상 장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처럼 다가왔다.


작중 애순의 딸, 금명이는 IMF 시기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 벼랑 끝이었을 그 시절, 그러나 닷컴 버블의 물결 위에서 그녀는 온라인 강의 창업가로 다시 일어선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또 때로는 기어오르듯 딛고 걷는 그 뜻대로 흘러가지 않은 인생이 내내 마음을 붙잡았다.


인생이란 정말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어지고, 예상치 못한 계절이 덮쳐온다. 우리는 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만, 동영상처럼 되감기를 누르며 돌아갈 수는 없는 존재니까.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삶을 유한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눈부시기도 하다.


그들의 아름답고도 험난한 이야기를 보며 생각했다. 모든 사람의 인생도 이렇듯 유한하다. 그 안에는 늘 힘든 날이 섞여 있고, 벼랑 같은 순간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느 날은 ‘살아내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지만, 또 어떤 날은 ‘왜 살아왔을까’라는 허무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모든 감정이 유효하다.


그렇기에 그 지점을 견뎌내는 데 필요한 것은 ‘끝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태도’ 아닐까. 언젠가 이 고난도, 이 불확실함도 지나갈 것이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 극명한 유한함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집중하게 된다. 어차피 다 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면, 지금에 몰입하는 것. 이 작품을 통해 그런 태도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믿고 싶은 두 번째 현명함이다.



사람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타인도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는 버릇이 있다. 말은 안 해도 ‘나도 그랬으니, 너도 그럴 거야’라는 마음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 다르다. 자라온 곳도, 나이도, 겪어온 일도. 그럼에도 지금 이 시간, 한 공간에서 부딪히고, 일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가끔 너무 쉽게 말한다.

부럽다, 많이 배워서 좋겠다, 저 나이면 여유도 있고, 뭔가 편할 것 같아.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감내했는지는 모른다. 대부분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말없이 웃기만 한다. 다 말해봤자 온전히 와닿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원래부터 똑똑했겠지, 집이 잘살아서 가능했겠지, 늘 승승장구했을 거야.

마치 그들에게는 고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도 나름의 고민과 두려움을 품고, 눈에 띄지 않는 싸움을 해왔다는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니 감당할 필요도 없는지조차 모른 채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한다. 그래서 나는 감히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지도, 함부로 평가하지도 않는 태도를 배우고 있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낀다.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차라리 그 일이나 하는게 좋겠어. 이런 말들은 듣는 이에게 상처로 남는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각자의 ‘시간대’는 다르다. 누군가는 막 고개를 넘는 중이고, 누군가는 아직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그래프도 다 그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남의 그래프를 함부로 그릴 수 있을까. 지금이 황금기일 수도, 아니면 이제 막 시작인 사람일 수도 있는 걸.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지 않기. 섣불리 부러워하지 않기. 어떤 인생도 쉽게 단정 짓지 않기. 그게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의 ‘현명함’이다.



그래, 현명함이란.

변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지나가는 것들을 사랑하며, 닿을 수 없는 삶들을 조용히 존중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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