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준 리코더 악곡집의 마지막곡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가 좀처럼 어려운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친구들이 몇 명이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남았습니다. 남아서 리코더를 불며 서로 가르쳐주고 함께 연주해 보고(는 핑계이고!,) 장난을 치며 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하교하면 수업준비와 갖은 업무로 더 바빠집니다. 특히 학기말이라 통지표와 함께 끊임없이 쏟아지는 마무리 해야 하는 업무에 치여 아이들 리코더 소리가 자꾸 거슬립니다.
"리코더 집에 가서 연습해 오렴! 어서 집에 가자"
여기에서 선생님의 가장 큰 포인트는 "어서"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포인트는 "리코더 집에 가서 연습" 인가 봅니다. 리코더를 가방에 넣고 선생님께 달려와 한참을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떱니다.
미안하지만 한쪽 귀는 아이들에게 열어두고 두 눈은 여전히 컴퓨터에 빼앗기는 중입니다.
"선생님 정말 대박 뉴스 알려드릴게요!"라는 말에도 "응"하며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제비처럼 대박 소식을 물어다 나릅니다.
"선생님, 하민이랑 희준이 서로 사귄대요!"
"응,,, 으, 응??"
한 박자 느리게 들어온 정보가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춥니다.
선생님의 첫마디는 "왜?!!!"입니다.
교실에 함께 남아있던 하민이와 희준이는 까르르 웃으며 부끄러워하다가 즐거워하다가 꽤 신이 난 것 같습니다.
컴퓨터에 뺏겼던 두 눈을 아이들에게로되돌려 놓았습니다.
"사귀면 뭐 하는 거야?"
"손도 잡고, 사랑한다고 이야기도 해줘요."
"...!!!!!"
속에 있는 말을 뱉을 뻔(?) 했습니다. 침을 한번 꼴딱 삼켰습니다.
"우리만 사귀는 거 아니고 얘네들도 사귀는 중이에요!"
그러고 보니 남자아이 2명, 여자아이 2명이 남아있었습니다. 둘이서 커플이 되고 커플이 된 4명이서 자주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말에도 같이 논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에까지 비밀로 하고 사귀는 아이들이 선생님에게는 말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요? 어른인 나를 자기들 비밀이야기 틈에 끼여준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면서, 이 소식을 들은 어른으로써 지도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저울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 애들한테는 말하면 안 돼요! 비밀이에요!!"
다시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아주 신중한 태도를 골라야 했습니다. 믿고 이야기해 준 선생님이 오히려 혼을 내거나 안된다고 반대하거나 꼰대 같은(?) 행동을 보일 경우 다시는 선생님에게 비밀이야기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미 알고 있었어!
-네? 진짜요? 엄마가 말했어요?
-엄마가 말하긴, 선생님이 먼저 엄마에게 말했는걸~
-네?? 어떻게요?
-선생님은 원래 모르는 게 없잖아, 엄마한테 둘이 너무 친하다고 진작 이야기했었어, 엄마한테 물어봐.
선생님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사실 오늘 사귄다고 한 하민과 희준이는 몰랐지만, 같이 있었던 동희와 별님이의 관계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부모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을 슬쩍 알려주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역시 선생님은 모르는 게 없어, 비밀을 이야기한 게 잘했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당부만 하면 됩니다.
선생님은 너네들이 사귀는 거 찬성이야, 괜찮아. 대신 딱 2가지만 약속해. 첫째, 스킨십 절대 금지! 둘째, 절대 단 둘이만 만나지 않기!
4학년이 어린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이만큼 자라 있습니다. 손을 잡으면 안고 싶습니다. 안아보면 뽀뽀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몸 이곳저곳도 만져보고 싶어 집니다. 아이들에게 정확한 성교육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연애를 하는 중이라는 것을 부모님들께서도 다 알고 있지만 "좋겠다!" 한마디 하고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커간다는 사실을 잊고 있나 봅니다.
"애네는 서로 만져요!"
벌써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예전 6학년을 가르칠 때 슬쩍 훔쳐본 문자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나 왜 자꾸 만졌어?
네가 좋으니까 그렇지, 자꾸 보고 싶어-
-넌 내가 어디가 좋아?
나랑 크면 결혼할 거야?-
아이들은 이렇게 자신의 첫 연애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줘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드시 어른들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연애도, 마음도, 사랑도, 배움이 꼭 필요합니다.
두 쌍의 커플들, 아니 4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부모님께 전화 한번 드려볼까?
아니야, 좀 더 지켜볼까?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벌써 스킨십이 많이 진행되었으면 어쩌지?
괜찮을까?
아, 맞다. 나 지금 할 일이 산더미지!!!
다시 두 눈과 귀는 컴퓨터로 돌아가 아이들 통지표에성적처리며 연말 마무리 작업에 빠져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