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테스트가 있는 날입니다. OMR카드에 이름과 학년을 기록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 같이 하나하나 이름을 적고 응시급수와 성별, 수험번호를 적고 짝꿍이 서로 확인까지 하도록 하였습니다.
OMR에는 50번까지 있지만 문제는 30번까지니 나머지는 걱정하지 말라고 안내하였습니다.
보통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체크해야 하지만 긴장할 아이들이 몇 번이고 틀릴 것 같아 그냥 연필로 체크하게 하였습니다.
OMR카드
지금부터 시험시작!
똑딱똑딱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한 아이들의 손놀림이 보입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시험이 사라지며 이런 숨 막히는 평가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10분 남았습니다.
고개 숙인 교실에는 시험지 넘어가는 소리, 연필로 쓱싹이는 소리만 고요하게 들려옵니다.
오늘의 평가는 언어능력평가입니다. 어느 정도 문해력을 가지고 이해하는지 체크하는 중입니다. 문제를 받자마자 문제가 너무 어렵다, 또는 문제가 너무 많다며 불평을 늘어놓던 아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이 시험은 의무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 것 같은 친구들은 평가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대신 평가를 보기로 결심했다면 50분 동안 최선을 다해서 풀어야 합니다. 자신의 언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면 말이죠.
객관적인 평가 결과는 알고 싶었던지 단 한 명도 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불평을 말하던 친구들도 '아니에요' 하며 시험지를 서둘러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10여 년 동안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익히고 말하며, 다양한 책을 통해 글을 읽고 배워왔습니다. 그런 자신의 언어능력이 과연 현재 내 수준에 맞게 잘 발달하고 있는지 궁금함이 클 것입니다.
제가 늘 물어보았거든요.
혹시, 책을 아이쇼핑만 하고 있는 거 아니야?
마트에서 물건을 담을 때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카트에 담기만 해서는 내 물건이 되지 않습니다. 결제를 해야 온전히 내 것이 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구경만 해서는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이라는 결제과정을 거쳐야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내가 아이쇼핑을 하는지 결제하는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정형화된 시험의 결과가 궁금한가 봅니다. 50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꼼짝없이 집중하며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띵동~
50분이 지났습니다. 시험지와 OMR카드 모두 제출하세요.
이게 무슨 일인가요? 대부분 OMR카드가 이름만 적힌 채 빈칸입니다. 시험지에만 문제를 푼 뒤 카드에 옮겨 적지 않은 것입니다.
- 얘들아, 왜 답을 옮겨 적지 않았어? 선생님이 처음에 OMR카드 작성하는 거 알려줬잖아?
-....
이름만 적고 답을 옮겨적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는데 아차, 싶습니다.
가르쳐줘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머리를 스쳐갑니다.
왜 OMR카드를 나누어줬다고 생각했을까요, 어디에 쓰는 물건이라 생각했을까요 허탈한 웃음이 나옵니다. 마음은 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