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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나 Jan 13. 2024

4.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feat, 화장실

분명 두 팔과 한 다리가 멀쩡한데 다친 다리 하나 때문에 온몸이 마비가 된 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눕혀진 채 병원 복도를 지나가니 머리 위로 형광등이 하나씩 지나갔다. 형광등 하나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아파하며 누워있는 걸까.


입원실에 누워 화장실이 급했지만 또다시 끊어진 다리의 흔들거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변기에 앉을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어요!"


간호사는 마지막 남은 방법을 하나 안내해 주었다. 바로 기저귀를 차는 것.

우리 아이들 기저귀 채워주던 것도 한참 전인데 내가 기저귀를 차야 한다니... 간호사가 기저귀를 채워준 뒤 조용히 등을 돌리고 말했다.


"천천히 하세요"


그렇게 금방까지 쌀 것 같은 느낌은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아직 그렇게 정신줄을 놓을 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결국 수술 후 소변줄을 달게 되었다. 소변줄은 정말 신세계였다. 힘을 준 적도 없는데 알아서 차곡차곡 모여지는 것이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이렇게 편할 수 있다니! 하지만 언제까지고 소변줄에 의지할 수는 없었다.

수술 후 이틀을 소변줄에 의지하다가 직접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편안함을 버리기가 아쉬워 정말 정말 심사숙고 끝에 결심한 것이다.

자, 이제 화장실에 가야겠다. 엄마가 휠체어를 가져오셨다. 침대에서 일어나 수술한 다리를 침대 아래쪽으로 내렸다. 붓기가 아직 빠지지 않아 늘상 올리고 있던 다리가 아래로 내려가니 갑자기 온몸의 피가 다리로 쏠리더니 다리로 심장이 내려간 듯 쿵쾅쿵쾅 놀라 팔짝 뛰는 느낌이었다.


겨우 휠체어에 타고 화장실로 가는데 문턱이 문제였다. 분명 휠체어를 위해 문턱에 고무판을 덧대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언덕을 넘기에도 초보 휠체어에게는 마치 한라산등반과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휠체어에서 내려 변기에 앉기까지도 어찌나 힘이 들던지. 수술한 한쪽 다리를 든 채 다른 다리로 균형을 잡고 점프로 이동하면서 최대한 아픈 다리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변기가 바로 앞에 있으나 가까이하기엔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이렇게 아픈 다음에서야 당연하지 않았구나, 깨닫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여전히 후회 속에 살고 있다.

그날 아침, 미끄러지지 않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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