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나 Jan 14. 2024

5. 병원에서의 하루 일지

침대와 한 몸 되어 드라마 몰아보기

나의 병원에서 하루는 보통 8시부터 시작된다. 눈뜨고 잠시 침대에서 미적대다가 7시부터 이미 배달되어 온 아침식사를 한다. 옆 침대 할머니가 어서 아침 먹으라고 보채면 못 이기는 척 일어나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남의 걱정까지 하느라 걱정이 많으신 편인 것 같다.

아침식사를 하고 개인정비를 좀 한다. 병원에만 있고 특별히 누가 면회오진 않지만 세수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씻고 로션을 바른다.

9시쯤 되면 수술해 준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을 돈다. 주고받는 말은 매일 뻔하다.


- 어때요?

- 괜찮아요.

- 응, 좋네요


10시엔 수술부위를 소독한다. 수술한 종아리는 대부분 퍼런 멍들이 가득하고 외과용 스테이플러가 잔뜩 박혀있다. 나중에 이 스테이플러를 제거할 생각으로 벌써부터 몸서리가 쳐진다.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아 퉁퉁 부은 발목엔 수많은 물집이 잡혀있다. 소독을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은 물집을 바늘로 트고 고름을 밀어 뺀다. 그러면서 얼음찜질과 다리 높게 올리는 미션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 그렇게 지혈제를 맞았지만 여전히 핏방울이 주르륵 떨어진다. 내 마음에도 눈물방울이 주르륵 떨어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항생제나 진통제 같은 주사를 맞고, 수시로 혈압, 체온 체크를 한다. 며칠에 한 번씩은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기도 한다.


그리고 남은 모든 시간은 침대와 한 몸이 된다. 예전에 일을 하느라 지치고 힘들 때마다 침대와 한 몸이 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렇게 억지로 침대와 붙여지길 원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지금 수술부위의 붓기를 빼기 위해 심장보다 높게 다리를 올려야 한다는 미션을 지키는 중이다. 안 그러면 자꾸 물집이 잡히고 고름이 찰 거라는 협박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중이니까. 아무튼 이렇게 누워서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누운 채로 책을 보기는 힘들다. 대신 팔의 근육이 허락하는 동안 핸드폰을 조금 한다. 그 와중에 이렇게 글도 쓴다.

누워만 있으니 자꾸 자다 깨다 하다 보니 정작 밤에는 잠이 안 와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할 무렵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일이 많아 힘들 때마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귤 까먹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실컷 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보다.


요즘 신혜선배우에 푹 빠져 [철인왕후]부터 [이번생도 잘 부탁해]까지 몰아보기 시작했다.

혼자 병실 침대에 누워 울다 웃다 했다. 실컷 울고 웃고 싶었지만 옆 침대의 할머니들 때문에 조용히 울고 웃었다.  


오늘도 베개가 촉촉이 젖어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