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분명히 출구가 있어.’
아홉 번째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죽으려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만든 세상에 죽음을 위한 패턴을 만들어 빙글빙글 죽음의 무도를 추고 있던 것이다.
날 때부터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었던 지나친 신념 때문이었다. 그 신념은 결국 나를 비범하게 만들기보다 무엇도 함부로 시작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라는 옷을 벗은 날것의 나는 특별할 필요가 없었다. 특별할 것이 없으니 뭘 해도 괜찮고, 어떻게 해도 괜찮았다. 특별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서야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의식을 통해 꼭 어딜 가야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던 생의 목적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양을 원하면 석양이 지는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으면 되고 행복을 원하면 지금 바로 행복하기를 선택하면 되니까.
조조는 출구로 가는 길에 만난 행운의 열쇠였고 그 열쇠로 열고 나온 출구는 여정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은 없으니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는 다음 여정을 시작해야만 한다. 다만 내 앞에 펼쳐지는 막연함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든 나라는 책의 다음 챕터가 될 것을 짐작할 수 있기에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의 장막이 걷히고 슬픔은 어둠의 정점에서 서서히 녹아내렸다. 조조와 나는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가 흐르는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끼고 페일 블루의 새벽 바다를 천천히 나누어 먹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