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Apr 25. 2024

외국인 연구원 30여 명을 위해 한식을 준비하다

2024년 3월, Strasair "한국의 날" 행사

내가 있던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는 가장 크게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University of Strasbourg)가 있다. 이 학교로부터 소정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Strasair라는 단체가 있는데,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이공계 석/박사학생과 박사 후연구원 등을 위한 단체이다. 주된 활동은 함께 모여 네트워크 형성을 하도록 돕고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을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며 헤쳐나가게 하기 위함인 듯하다. 처음 이곳에 가게 된 것은 실험실 내 옆자리인 T를 통해서 이다. T는 굉장히 소셜활동을 좋아하는 친구이다. 연구소 내에서도 학생모임에서 이벤트들을 기획하며 활동하고 있고, 우리 연구실 자체에도 이런저런 모임을 자주 주최하곤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T: "이번 주말에 아베르바이젠의 날이 있어"

나: "응? 그게 뭔데?"

T: "Strasair라고 연구원 커뮤니티가 있어. 거기서 Cafe linquistique라고 한 나라에 대한 행사를 열곤 해. 거기 가면 4유로에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퀴즈도 풀며 놀 수 있어"

나: "It sounds nice"

T: "이번주 금요일인데 너도 올래?"


그렇게 그의 초대를 받아 금요일 퇴근 후,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찾아갔다. 6시부터라고 했는데, 6시에 도착하니 역시나 프랑스랄까.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6시부터 시작이면 6시에 모든 게 준비되어 있어야겠지만 학생들이 준비해서 인지 준비도 덜 되어있고 내가 생각하던 그런 잘 준비된 행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든 게 조금 엉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4유로 내는데 불평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들어보니 년간 10유로의 회원비를 내면 이후 행사들이 무료라고 했다. 한 두어 번만 참석해도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아 년 회원가입을 한다고 하고 10유로를 냈다.


30여분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음식을 차려냈다.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여 30여 명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이 세팅되고, 접시를 하나 둘 들고는 차례로 음식을 받아갔다. 처음 먹어보는 낯선 음식들이었다. 포도잎에 고기와 쌀을 넣어 감싼 후 오랫동안 조리해 낸 요리가 인상적이었고 그 맛이 좋았다. 술, 음료수 들과 함께 음식을 간단히 즐긴 후에는 그 나라에 대한 퀴즈 맞추기가 있었다. 난 아제르바이잔이란 나라를 이름도 이날 처음 알았기 때문에 아는 게 전혀 없어서 풀 수가 없으니 재미는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 들이라서인지 영 어울리기가 편치 않았다.


그렇게 지내고 그 이후에는 반년도 한 참 지나서야 "인도의 날" 행사에 참가했었다. 그날 갔던 건 인도 요리를 먹고 싶어서였는데, 요리 자체 준비도 한 시간도 넘게 늦어졌고 아제르바이잔보다도 더 엉망이었다. 그 당시 몇 달 뒤면 내 계약이 끝날 수도 있던 상황이었던 지라, 내가 가기 전에 "한국의 날"을 열어 요리를 담당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참가했던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그 당시에 이 커뮤니티 임원으로 일하고 있던 T에게 제안했다. 그러자 바로 회장과 연결시켜 주며 내가 얘기하게 했고 그가 ok 하면서 바로 몇 달 뒤에 한국의 날을 열기로 하였다.

일정이 정해지고, 우선은 크게 뭐 할 것은 없었다. 두어 달 남아있었기에 미리 준비할 것도 없었고, 한 달 여전쯤에 일단 메뉴를 짜기 시작했다. 세네 종류의 요리에 하나쯤 채식 요리가 있으면 된다고 했다. 최대 250유로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하기에 난 예산으로는 충분하다 생각했다. 먼저 메뉴를 고민했다. 채식요리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잡채다. 고기 대신 버섯 넣은 잡채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채식에서도 비건으로 준비하는 셈이니 못 먹을 사람은 없는 요리가 되는 거다. 그런 후, 매운 요리를 못 먹는 사람을 위해 간장 요리, 그다음 한식하면 매운 요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매운 요리, 거기에 김치요리- 이 정도로 준비하면 한국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내가 정한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 간장찜닭

- 비건 잡채 (고기 대신 버섯 이용)

- 김치볶음밥

- 매콤 돼지제육볶음


행사가 있는 주간이 되었고, T가 받아온 카드를 들고는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볼 것이 그리 많진 않았다. 예산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모든 재료를 살 수 있었다. 장을 보고는 무거운 짐들을 T가 집까지 자전거로 실어다 주었다. 행사 당일에는 조금 일찍 퇴근하여, T가 준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행사 전날 필요한 재료들을 미리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두었다. 디저트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미리 미니 사이즈로 호떡을 만들었다. 호떡을 준비하여 냉동해 두고 당일 오븐에 데워갈 생각이었다. 행사 당일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T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로 정리해 두었고, T에게 채소 다듬기, 썰기 등을 맡기고는 나는 조리를 시작한다. 간장 찜닭을 만들어서 끓이는 동안 잡채를 만든다. 인덕션의 4구를 모두 사용하며 조리한다. 요리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많은 양을 만드는데 냄비나 팬이 작아서 여러 번에 나눠 요리해야 한다는 게 불편했다. 그렇게 반복해서 요리하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모든 요리들을 마치니 5시가 조금 지났다. 거의 예상시간에 맞춘 셈이니 성공이라 하겠다. 준비한 요리들을 모두 가방에 담고는 T와 함께 트램을 타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Strasair 임원들이 미리 마실 것 등을 세팅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 세 요리가 조금 늦을 거라고 전달해 달라고 했다. T는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늦어봐야 15분 정도 늦을 거고 지난번에 "인도의 날" 때 한 시간 늦은 거 기억하지 않냐면서 말이다.

그렇게 6시를 좀 넘기고 행사장에 도착해서, 바로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미리 음식에 대한 소개글들을 정리하여 출력해 왔다. 요리 앞에 하나하나 붙여두고, 모두 준비됐다고 사람들에게 알린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는 음식을 받아가기 시작한다. 앞에 설명글을 써놨건만 다들 직접 물어본다. 하나하나 음식을 설명해 준다. 이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뭔지 알았다. 무슨 고기냐고 물을 때 돼지고기라고 하자 못 먹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종교적 이유에서였다.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사람들이 오는 만큼 다양성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한국에서 돼지고기를 워낙 많이 먹으니 아무 생각 없이 돼지고기 요리를 했고, 더 맛있게 하겠다며 김치볶음밥에도 베이컨을 추가하여 돼지고기 못 먹는 사람들이 먹지 못하는 요리가 두 가지나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비건용과 닭고기가 있으니 그들이 먹을 게 없지는 않았다. 이 점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음식을 정말 잘 먹었다. 매운맛을 챌린지처럼 시도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두세 번이나 요리를 더 떠가서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한 번씩 떠간 후에는 디저트인 호떡을 꺼내두었다. 호떡을 기본인 시나몬설탕 외에도 단팥을 넣은 앙금호떡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 "red beans"라고 하자 신기해하며 사람들이 시도하였다. 낯설어하면서도 맛보고 맘에 들었는지 친구를 데려와서 이거 먹어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단팥호떡이 인기가 더 많았다. 의외였다.


내가 맡은 요리는 대성공에 가까웠다. 양도 충분했고, 모두가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즐길 수 있었다.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 만큼 한국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내 다른 한국인 친구와 T가 함께 준비한 한국에 관련된 퀴즈를 푸는 시간이 되었다. 몇몇 문제는 나조차 헷갈리는 문제였다. 한국에 대해 국기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평창, 평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예상한 대로 많았다. 퀴즈도 마친 후에도 사람들이 K-pop이 틀어진 공간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며 즐겼다. 몇몇이 내게 다가와 요리를 혼자 다한 거냐며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한국 문화에 대한 얘기들을 하곤 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 중국인은 최근에 "더 글로리"를 봤다며 내게 봤느냐고 물으면서 더 글로리에 관한 얘기도 나누었다. 그때 누군가 음악을 강남스타일로 바꿨다. 강남스타일이 십 년도 더 된 노래지만, 대부분 20대 초중반인 사람들 모두가 아는 노래였다. 다들 강남스타일을 재미나게 듣는 와중 누군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자기는 강남스타일을 따라 부를 수 있지만 대체 무슨 가사인지 모르겠다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그에게, 강남이 잘 사는 동네이고, 자신이 강남스타일이라고 여자에게 얘기하는 건 한마디로 "나 부자야. 나 잘났어~"라는 내용이라 설명해 줬다. 그러자 그가 납득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6시부터 10시까지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렸다. 내가 제안하여하게 된 것이었고, 이 당시에 곧 프랑스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행했던 것이었는데 참 잘했다 생각한다. 한국에만 머물 때는 한국인이면서 가끔 흔히 말하는 국뽕 콘텐츠를 소비하곤 했다. 해외에 나오는 나를 소개할 때는 나는 항상 그냥 내가 아니라 "한국인"인 나이다. 나의 정체성에 한국인임을 강조하게 되다 보니, 한국에 대해 사람들에게 더욱 긍정적인 인식을 퍼트리고 싶어졌다. 또한 이렇게 30여 명을 위한 요리를 한 번에 해내고 나니, 단체를 위한 요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고, 무엇보다 한국에 대해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구나라 느꼈다. 경험을 통해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이전 13화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서 부업이 되어버린 한식 케이터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