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엄마와 만둣국

만둣국이 맛없을 수도 있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은 종종 해외 출장을 가셨다. 그럴 때면 외할머니가 오시거나 근처에 사는 친척 어른이 우리 삼 남매를 돌봐주시곤 했다. 돌봐주신 다는 건 우리를 위해 밥을 차려주셨다는 거다. 대부분 외할머니가 오셔서 돌봐주셨지만, 할머니가 시간이 안되실 때는 친척 어른이 밥때가 되면 와서 도와주셨다. 그때가 바로 친척 어른인 작은 엄마가 오셨던 날이었다. 작은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하는 분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일주일 간의 식사가 조금 걱정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시간 내주시니 고마워하며 잘 먹어야지라고도 다짐하고 있었다.

충격의 그날 아침, 학교 갈 준비를 마칠 때쯤 작은 어머니가 냄비를 들고 오셨다. 만둣국이라고 하셨다. 만둣국이라니 맛없기도 힘들 테니 오늘은 잘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잠시 후, 만둣국을 떠주셨다. 만두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설마... 만두를 직접 밎으신건가?'싶어 여쭤보니 활짝 웃으시며 김치 만두를 빚어봤다고 하셨다. (작은 엄마는 상당히 해맑으신 분이다.) 걱정이 되었다. 생긴 것 만으로 맛있게 생기지 않았었다. 조심스레 만두를 숟가락으로 잘라 입안에 넣어본다. 맛없다!!! 모든 재료가 따로 놀고 있었다. 서로 전혀 어우러진 만두소가 아니라 재료들이 제각각 따로 놀면서 간조차 하나도 맞지 않았다. 너무 맛이 없었지만, 해주신 정성이 있으니 열심히 먹어본다. 겨우 한 그릇에 담긴 커다란 만두 세 조각을 해치웠다. 그런 나를 보시더니 잘 먹는다며 말씀하셨다. "잘 먹네. 더 줄게 더 먹어. 여기 많다." 그분을 실망시켜 드릴 수 없어서 더 얻어서 또다시 먹었다. 그날 아침의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 한동안 나는 만둣국 먹기가 힘들었다. 만둣국을 먹을 때면, 그날의 만둣국이 생각났다. 나에게는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버렸던 모양이다. 작은 어머니를 못 뵌 지 한참이 되었다. 해외로 나오게 될 때도 코비드 시국이라 가족과 친한 친구 몇 명 외에는 아무에게도 인사를 못 했었다. 딱히 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잘 지내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만둣국은 맛없었지만, 해맑게 웃으시며 떠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 전 연구실에서 주말에 하이킹을 간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생활 속 걷기 위에는 운동이 전무했던 터라 살짝 걱정이 됐다. 혹시나 혼자만 뒤쳐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든든히 먹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냉장고를 뒤져보았다. 아시아 마켓에서 사 온 비XX 만두가 보였다. 따뜻하게 만둣국 한 그릇을 제대로 끓여먹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골국물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없으니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고기를 볶아서 고명으로 올리기로 계획한다. 먼저 육수를 낸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낸다. 그런 후, 멸치만 있는 상태로 육수를 진하게 뽑아낸다. 육수가 준비되는 동안 고명을 준비한다. 소고기 다짐육에 간장, 설탕, 다진 마늘, 다진 파로 간단히 간을 하고 볶아낸다. 팬을 닦아내고, 계란 지단을 부쳐낸다. 계란 지단을 잘게 채 썰어 준비해두면 고명은 끝이다. 준비된 멸치 육수에 냉동 시판 만두를 넣었다. 만두에 자신 있다면 직접 빚은 만두도 좋을 것이다. 맛있게만 한다면 뭐라도 좋다. 만두를 넣고, 국물에 간을 한다. 국간장을 넣고, 국간장의 절반 정도는 액젓을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냉동 만두가 다 익기만 하면, 간단하게 만둣국 완성이다. 그릇에 옮겨 담고 고명을 올린다.

하이킹은 성공적이었다. 중간에 매우 힘들어서 뒤처질 것 같았지만, 힘을 내서 모두와 함께 정상에 있는 성에 도착했다. 날씨가 환상적으로 맑은 날이어서, 모든 게 좋았다. 든든하게 먹고 간 만둣국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서 정상에 있는 성을 그림으로도 그려 남겨보았다. 이 날의 만두국은 기분 좋은 하이킹과 함께 푸르던 하늘이 함께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