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볼
그날도 어김없이 해가 찬란하게 내리쬐는 오후였다. 차가운 커피잔에서 나오는 습기가 천천히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한가로운 거리의 작은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종종거리는 사람들, 떨어지는 낙엽,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신기하지?” 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지만, 그 속에선 어떤 확신이 느껴졌다. “너랑 나, 이렇게 걷는 게 말이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한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기대고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가 처음 나에게 어색한 고백을 했던 그날, 내 마음은 한껏 설렜지만, 그의 당황스러움이 눈에 보여 묘하게 안쓰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고백은 참 어설펐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이 지금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다시 한번 혼잣말을 던졌다. 눈을 살짝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 사람과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우리는 서로가 흔히 말하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도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는 나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작은 말투와 미소,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의 시선은 길 건너편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느리게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같이 걸으면…”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데, 그냥 너랑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되새겼다. 그가 말하는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주는 평온함. 그것은 특별하지 않음 속에서 느껴지는 가장 특별한 감정이었다. 우리 둘의 대화는 늘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취향이 다른 음악, 가끔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웃음이 함께했다.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생각해,” 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가 손해 보는 것 같다가도, 너를 만나는 게 나한테는 가장 큰 행운이라는 걸 깨닫게 돼.”
나는 그의 말에 살짝 웃으며, 그가 얼마나 나에게도 소중한지 말하려다 그저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는 온기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웠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의 손끝에서부터 내 심장까지 전해졌다. 나는 그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그날, 우리가 함께 걷던 거리는 그저 평범한 도로였고, 가게들은 일상처럼 문을 열고 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속삭였다. 작은 말들이었지만, 그 속에는 무한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해가 점점 저물어갈 때,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있잖아, 그때 내가 처음 고백할 때… 많이 어색했지? 이제 와서 다시 말하는 건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얘기하고 싶어.”
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미소 지었다. 그 고백의 순간은 어색했지만, 이제는 그 어색함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던 그때, 우리의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이 우리의 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평범함이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