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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Oct 27. 2024

동물과 아기

요즘 SNS에서 동물이나 아기 사진을 보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는 합니다. 원래는 동물도, 아기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저 티 없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느껴진달까요. 그저 소중하고 사랑스럽더군요. 그래서 힐링이라고 하나 싶습니다.


그이는 아기를 가질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요. 일단은 경제적인 문제가 컸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이를 꼭 닮은 아들, 혹은 나를 닮은 딸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나 예쁠까요. 어른들은 나중에 나이가 들고나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자녀를 얻은 일이라고 들 하시지요. 그 이유를 얼핏 알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합니다.


*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대형견인 반려견을 데리고 공원 산책을 하시는데, 소형견을 안은 어느 부부가 글쓴이를 나무랐다지 뭐예요. 비난을 위한 비난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쓴이는 반려견에게 입마개를 하지는 않았지만 목줄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요. 댓글에 찬반토론이 열렸습니다. 누군가는 입마개조차 하지 않은 글쓴이를 타박했고, 또 누군가는 대형견주들을 응원했습니다. 대형견을 보자마자 티 나게 반색을 하며 자신의 반려견인 소형견을 대피시켜한 부부의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지요. 대형견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그조차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어릴 때, 동생과 길을 걷다가 유리창 안의 대형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신기했던 저희는 순수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지요. 그런데 살짝 열린 문틈으로 대형견이 걸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냅다 달렸습니다. 도망이라는 말이 맞을 테지요. 유치원생인 두 아이가 자신의 몸집보다 두 배는 큰 개(사실 소형견이었어도 그랬을 테지만)에게 쫓기던 순간의 공포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말로 다 하지 못할 공포였습니다. 물론 강아지는 놀고 싶어 다가온 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위압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입니다.


게다가 저의 작은 이모는 마당에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셨는데, 늘 목줄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엉덩이를 물린 적이 있고요.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다 보니 저는 자연스레 강아지를 무서워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눈으로 보는 건 좋아하지만,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만지거나 놀아주지는 못하지요. 이건 저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그렇습니다. 강아지를 만나면 얼어버리는 정도랄까요.


사람마다 이런 각자의 사정이 있잖아요. 길을 가다 보면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소형견과 대형견이 주는 위압감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순한 대형견이라도, 겉보기에는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입마개를 하지 않은 대형견과 가까워질 때면 꽤 멀찍이 떨어져 있더라도 멀리서부터 얼어버리곤 합니다. 가까이 갈수록 두려움이 심해지거든요. 그나마 입마개를 한 대형견은 마음을 많이 놓게 됩니다. 오히려 견주에게 타인을 배려해 주심에 감사하지요. 혼자 무서워서 얼어버리면 견주분께서 죄송하다며 피해 주시는데, 그게 되려 죄송하더군요. 소형견이라도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경우에는 같은 무서움이 들지만 말입니다. (목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공포감을 주지요.)


저도 강아지를 보면 마냥 다가가고, 예뻐하고, 놀아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어쩌겠어요, 화면으로 보며 마냥 예뻐하는 수밖에요. 


*


오늘은 온도가 33도까지 올라간 하루였습니다. 누진세를 걱정하면서도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가 없는 날씨. 아파트 단지를 걷는데, 원래 걷던 길이 아닌 조금이나마 시원한 분수대를 지나쳐왔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데 바로 눈앞에서

-야옹.

이라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친 거 있지요? 행여나 따라올까 봐 겁에 질려서 말입니다. 고양이도 더운 날씨에 지쳤는지 분수대 구석에 배를 내놓고 누워있더군요. 하마터면 지나가는 행인이 자신을 못 볼까, 나 여기 있다며 운 것 같았습니다. 하마터면 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들어왔지만 말입니다. 


동물을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실제로는 무서워하는 아이러니인 듯합니다. 소형견이던, 대형견이던, 고양이던, 새던, 쥐던 모두 같지요. 그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조금씩 배려해 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아기들이니까요.


저와 그이 사이에도 아기나 동물이 생기는 순간이 올까요? 

 

아, 지난번의 화분은 오늘 심어주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식물이 생겼네요. 이름처럼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고, 행운이 따라주는 인생을 살아가려 합니다. 오늘도 덕분에 즐거운 하루가 되었고요. 여전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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