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행사로 재미를 맛 본 나는 남은 기간 동안 참여 행사의 정점인 도장 행사를 여러 번 계획했다. 번호대별로 책을 빌려 읽는 형식과 신간도서를 대상으로 하는 형식, 그리고 여러 종류의 독후감을 써보는 형식까지 총 세 가지 방식이었다.
첫 번째였던 번호대별로 책을 빌려 읽는 형식은 특정 주제의 책만 빌리는 현상을 잠재워보기 위함이었다. 보통 초등학생 친구들은 800번대, 400번대, 900번대 정도의 책만 주로 빌린다. (사실 이 현상은 성인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서 다양한 번호대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번호별 칸을 만들어 총 10개의 도장을 모으도록 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이 행사는 도장 행사 중에 가장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다. 주 이용층인 저학년 학생들이 특히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의 수준을 잘 판단해서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때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도장을 위조하는 학생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 학생은 도장과 동일한 색의 사인펜으로 같은 모양을 그려왔다. 정말 소름이었던 건 두께가 달라 들킬까 봐 전에 받은 도장도 전부 사인펜으로 덧칠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1학년 학생이었는데..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타일렀던 기억이 있다.
여러 부작용을 겪고 다음 행사는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신간도서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였는데, 도장 수를 줄여6개로 정하고, 참여 방법을 단순화했다. 3개는 대출만 해도 도장을 받을 수 있었고, 나머지 3개는 독후감까지 제출해야 했다.
그랬더니 정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하루에 도장 1개씩만 받을 수 있으니 6일을 와야 했는데, 꽤 많은 아이들이 끝까지 도장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도장을 다 모으고 나면 뽑기를 통해 상품을 줬는데 그 과정을 특히 재밌어했다.
하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 평소 도서관에 오지 않던 애들까지 몰려들어 도서관이 점점 더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혼내봤자 그때뿐이기도 하고, 도장 찍기에 대출, 반납, 독후감 확인까지 혼자 해내다 보면 제때 지적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과정이 한 달이나 지속되면서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 단축시켜 끝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버텼다. 그러니 다음에 예정되어 있던 독후감 도장 행사는 당연히 취소되었다. 다음 계획서를 제출하기 전에 도장 행사에 질렸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엔 질리고, 취소까지 했지만 그래도 도장 행사는 내게 애증의 존재로 기억된다. 그 한산하던 도서관을 붐비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활성화라는 내 유일했던 목표에 다가가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만큼은 인정한다. 그랬기에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느꼈던 성취감 역시 가장 컸다.
교육적이면서도 참여형이며, 반응도 좋았던 행사가 나를 힘들게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혼자라는 점. 방학 때처럼 혼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마지막 행사도 취소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도서관 이용 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을 교육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였던 나는 그 모든 걸 감당하기가 너무도 벅찼고, 결국 이미 도장판까지 만들어뒀던 행사를 취소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아예 행사를 포기하진 않았다. 앞선 행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반영하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행사는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