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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29. 2021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뭐든,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행히 나는 학교에서 사서로 살아남았다.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아니 사실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살아서 나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에 학교도서관에서 일한 적도, 앞으로 일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출근 전에 했던 걱정 중 과한 것도 있었고 좀 더 했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인생이란 원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도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퇴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서관 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됐다. 마지막 휴관 때 학생들이 몇몇 찾아와 도서관 언제 여냐고, 행사 언제 하냐고 물어보는 걸 보고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 게다가 근무 막판에 꽤 많은 교사들로부터 메신저를 받았었다. 혹시 다음연도에도 근무하냐는 물음이었다. 내가 있다면 도서관을 담당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 것이다. 아니라고 말하며 내심 뿌듯했다. 내가 일을 좀 잘하긴 했지.




'학교에서 사서로 살아기' 라는 이야기를 쓴 것은 내게 여러 의미가 있다. 사서를 그저 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한 하소연이기도 하고, 지나간 기억을 쉽게 까먹지 않기 위한 일종의 기록이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써 내려간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쓰기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스스로를 위한 치유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바빴던 학교도서관 계약 기간이 끝나고, 갑작스럽게 한가해졌다. 실업 급여를 받으며 하고 싶은 일이 이것저것 많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 생각만 많아졌다.


그래서 근무할 당시 가끔 썼던 다이어리를 들여다봤다. 온갖 분노의 표현이 잔뜩 담겨있었다. 지나간 일이라 그런지 웃음이 나왔다. 이때 진짜 화가 많이 났었지. 그렇게 하루하루 읽어나가는데, 점점 어라? 싶었다. 그 하루들을 보낼 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내 상태가 심각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태생이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인데, 농담 식이지만 자책하는 표현까지 쓴 걸 보며 이건 정말 아니었구나 싶었다. 계약직이었던 것도, 딱 12월까지였던 것도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진짜 두 달만 더 했어도 정신 나갔을 것 같은 상태였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건 내 오랜 습관인데,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고조되면 글을 쓰곤 한다. 그럼 마음이 조금 풀린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며 풀어내는 것이다. 근무할 때 정말 미칠 것 같아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약속을 잡았고,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며 많이 풀어낸 줄 알았다. 그럼에도 저런 상태였다면 이젠 글을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도서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걸 통해 스스로 이만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했다. 이렇게까지 고생했으니 학교 다신 가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도 있었고.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 건, 살면서 겪었던 모든 경험을 활용하면서 학교도서관 근무를 해나갔던 것 같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용자 교육이나 여름캠프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건 대학생 때 했던 전공 강연 활동 덕분이었다.


그리고 산만한 초등학생들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건 휴학 중에 잠시 일했던 어린이 박물관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첫 근무지에서 근로장학생을 배정받을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실제로 대학생이었을 때 방학 중 교외 근로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학교도서관은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사서의 역량에 따라 운영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괜찮은 사서 좀 많이 뽑아주고, 괜찮은 사서가 되려고 노력해주길..


혹시나 학교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얼른 도망.. 은 농담이고, 적어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심지어 직장에서 만나기 힘든, 학교에서는 더더욱 힘든 좋은 담당 선생님을 만났고, 그 사실에 너무도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무가 쉽지 않았다. 멘탈 관리가 가장 중요하고, 옳은 길을 가고 있다면 모두가 무시해도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그렇게 부디 학교에서 살아남으시길..




내가 딱 하나, 학교도서관 근무 중 미화할 부분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30화 내내 사람에게 치여 불신의 늪에서 헤매는 이야기를 썼던 걸 생각하면 좀 웃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실이다. 결국 끝까지 버틴 건 좋은 사람 덕분이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일했지만 같은 사업의 참여자였던 학교 사서들, 행운 그 자체였던 잘 맞는 담당 선생님. 그들이 없었다면, 정말 글로도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니 그전에 관뒀을 확률이 더 높다. 그리고 매번 온갖 새로운 분노 썰을 풀어도 군말 없이 듣고 편을 들어준 소중한 내 사람도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모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다.





첫 작품이니까 당연히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썼으니 후회는 없다. 이제야 비로소 쌓인 감정이 해소되고 후련한 기분이다. 이제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학교 사서도 쉽지는 않구나, 생각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다.


그리고 많진 않았지만 꾸준히 읽어주시고 라이킷도 눌러주신 브런치 독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꾸준한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글을 끝까지 쓰는데 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시작부터 끝까지 읽고 응원해준 소중한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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