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당시 내 계약 기간은 12월까지였다. 그래서 마지막 주에는 3월 초처럼 휴관을 하고 도서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학교와 협의를 했다. 그전에 처리해야 할 것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행사 상품이었다. 나름 퍼준다고 퍼줬는데도 꽤 많이 남았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번 도장 행사에 너무 질려서, 아주 잠깐 행사 절대 안 해야지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또 마지막이니 마음이 약해져 버렸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성취감을 줬던 게 바로 행사였으니까. 그래서 결국 마지막까지 행사로 불태우기로 했다.
대신 여태까지의 교훈을 최대한 반영한 형태의 행사를 기획했다. 혼자 하는 행사는 일단 기간을 길게 잡으면 안 된다.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도서관다우면서도 학생들이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이 조건에 딱 맞는 행사는 역시 퀴즈 행사였다.
브런치에 자세히 쓰진 않았지만, 이전에 가로세로 낱말 퍼즐과 초성 퀴즈, 청구기호 미로 찾기, 도서관 이용법 등의 퀴즈 행사를 여러 번 진행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었다. 거기다 별 거 아닌데 학생들이 정말 좋아했던 선물 뽑기까지 결합시켜봤다.
행사 당일, 초성 퀴즈 활동지를 풀게 하고, 통과한 사람에겐 직접 제작한 뽑기권을 줬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에 와서 선물을 뽑아 받아갈 수 있게 했다. 이 행사는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흥했고, 그 덕에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학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줄까지 서있는 광경을 보고 나 역시 보람을 느꼈다.
이게 마지막 날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학교도서관을 미화하며 추억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무리 업무 중 대표적인 건 단연 연체자 처리일 것이다. 워낙 큰 사건이 많이 생략했지만 사실 여름에 진행했던 장서점검 전에 연체자를 대상으로 안내를 했었다. 그래서 그 해에 빌려갔던 건 대부분 받았는데 장기 연체자는 답이 없었다. 불러서 찾아보라고 얘기하고, 없으면 다시 오라고 해도 절대 그러지 않았다.
또 한 번 전임 사서를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대체 연체 기간이 2~3년이 넘는 연체자가 여러 명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이런 당연한 부분에 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교도서관의 교육적 역할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빌린 책을 잃어버린 경우 반드시 배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도서관을 이용하건 당연한 것이고, 그 규칙 자체를 교육해야 하기 때문에 더 당연한 것이다.
학교에서 그냥 예산으로 채우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그렇게 되면 시스템상 그 책 자체가 한 권 더 늘어나야 맞는 것이고 상황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도서관 책은 모두 함께 이용하는 공공 자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잃어버렸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너무도 합리적이고 당연한 규칙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걸까?
이 부분만큼은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끝까지 연체자를 독촉했다. 보통 1차적으로는 담임교사들에게 메신저를 보내는데 여기서 한 60% 정도가 해결이 된다. 연말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어 2학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메신저를 보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연체자는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교실로 찾아갔다. 그러자 교사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아무리 메신저를 보내도 무시하더니 직접 찾아가니까 민망해하며 학생을 불러줬다. 차분히 직접 얘기하자 95%까지 회수가 되었다. 남은 건 장기 연체자뿐이었다. 그들은 결국 학부모와 연락까지 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방학 때 새 책을 반납함에 넣기로 약속한 마지막 1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연체자를 해결했다.
이제 남은 건 도서관 정리와 관련된 마무리였다. 장서점검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도서가 제대로 배열되어있는지는 확인했다. 그리고 학기 중에 시간이 없어 미뤄둔 서랍장 곳곳의 쓰레기를 정리했다. 대체로 기간이 한참 지난 간행물이나 홍보용 책자와 같은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내가 받은 것은 아니었고 전임 사서가 처리하지 않고 놔두고 간 것인데, 마지막 담당자는 나니까 꾹 참고 정리했다.
그리고 학기 초에 받았던 얼마 되지 않는 서류를 찾아 파일에 정리했다. 다음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으니까. 거기에 마지막 남은 인류애를 쥐어짜서 팁과 약간의 하소연을 담은 2페이지짜리 글을 남겼다. 이 정도 해줬으면 내게 연락하지 말라는 의도도 조금은 담겨 있었다.
정리하면서 잔뜩 쌓인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를 비우며 근무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둘러봤다. 곳곳에 내가 남긴 흔적이 보였다. 당장 몇 개월 후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정말 애써서 꽤 괜찮은 도서관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문단속을 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바람마저 상쾌한 퇴사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