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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23. 2021

끝까지 민폐인 독서짝꿍

귀찮은 건 미루는 게 이 사업 특성인가요?


첫 번째 퇴사 대위기를 불러왔던 독서 짝꿍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나를 괴롭게 하는 사업이었다. 당시 난리를 쳤음에도 잊을만 하면 예의없이 단체 수업을 하러 몰려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 때문에 연체된 책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평소에 도서관을 전혀 이용하지 않던 애들까지 이용하게 되고, 그들에겐 당연히 대출과 반납에 관한 개념이 희미했다. 물론 그것과 관련한 교사의 가르침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관련 문제로 마지막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막판에 부장 교사가 결정타를 날렸다. 자신들이 독서 짝꿍 사업 예산으로 구입한 도서가 여러 권 있는데, 다 사용했으니 도서관에 갖다줘도 되냐고 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걸 왜 도서관에 두지? 도서관 예산으로 산 것도 아닌데?


평소 나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교사라 돌려 말했지만, 역시나 먹힐 리가 없었다. 책이니까 도서관에 있는 게 좋잖아요? 가 결론이었다. 듣기 좋게 포장했지만 솔직히 책을 연구실에 두고 관리하기 귀찮으니까 미루는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설령 정말 도서관과 학생을 위하는 마음이었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에 대한 배려는 정말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실갱이할 시간조차 아까운 학기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책이 몇 권인지 몰랐던 나는 결국 알겠다고 받아들였다.




학년 별로 도서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책은 총 120여권이었다. 그걸 보는데 정말..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애써 참으며 책을 옮긴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래,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겠니.


결국 나는 틈틈히 업무 시간을 쪼개서 책을 시스템에 등록하고, 바코드와 청구기호를 인쇄하고, 온갖 스티커를 붙이고, 3면에 도장을 찍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스스로 선택했던 3차 수서 때 샀던 책의 2배가 넘는 분량이었다.


모른 척 그냥 쌓아둘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비난했던 안일한 사서와 똑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일하는 동안 생긴 일은 최대한 내가 수습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 짓을 하며 또 한 번 생각했다. 학교는 정말 아니다. 앞으로 혼자서 일하는 곳은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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