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 그림 에세이
요즘 읽고, 아니 보고 있는 책은 손철주 미술평론가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다.
연전 나는 선생의 다른 책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보았다. 그때 그림에 까막눈이 내가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그 책을 지인들께 권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사두었다가 후루룩 읽고는 덮어 두었던 것이다. 워낙 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작금에 슬슬 읽어보려고 책장을 열었다가 빠져들게 된 것이다.
선생의 필력에 입이 딱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선생의 사유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지치기 쉬운 한 여름 시원한 청량수 같은 책을 소개하는 마음이 기쁘다.
231쪽
〈희고, 검고, 마르고, 축축하고〉
(...)
과연 수묵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천품인가.
먹은 컬러가 나타내지 못하는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다. 그냥 검은색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칠하지 않은 종이는 흰색이다. 먹을 더하면 검은색, 그리고 바짝 마른 색과 축축한 색, 마지막으로 진하고 옅은 색. 그래서 먹은 '육채'라고 했다.
(...)
요즘과 같은 산문시대에도 수묵화만큼은 여전히 ‘화중유시', 시 같은 그림이다. 송나라 때 화원을 뽑는 시험은 참으로 흥미롭다. 뭐뭐를 그려보라는 주문 없이 아예 시를 지어 출제하게 했다. 이런 문제도 있었다.
‘꽃을 밟고 달려온 말발굽의 향기.’ 시험에서 꽃이나 말을 그린 사람은 죄다 떨어졌다. 입선작은 흙바람을 따라 날아오르는 한 무리의 나비를 그린 작품이었다. 꽃향기가 날리는 곳에 어찌 나비가 없을까 보냐는 참으로 시적인 발상이다.
(...)
단 한 순간에 초월의 경지로 나아가는 그림이 수묵화이다. 그것은 손끝의 재주가 아니라 정신의 깊이에서 탄생된다. 장인의 현란한 기교가 행세하는 세상, 정신의 고매함이 밴 수묵화가 그늘진 외지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상상은 우리는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