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산문집-라면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다. 라면이라는 음식은 서민들의 최애 음식 중 하나다. 우리나라 국민의 라면 사랑 때문인지 외국에서도 한국 라면 인기는 꽤 많은 편이다. 언젠가 코타키나발루에서 우리나라 진라면을 사서 먹은 적이 있다. 무지 반가웠다. 그런데 맛은 우리나라에서 먹을 때와 조금 차이가 있었다. 내 입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일행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내국인들 입맛에 맞추려 향신료를 첨가한 걸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 때문은 아니지만 나도 「라면은 먹으며」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 ㅎㅎ
부끄럽지만 브런치에 올리기도 했으니 잘 뒤져보면 나올 것이다.
31쪽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먹는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미군에게 얻어먹던 내 유년의 레이션 맛과 초콜릿의 맛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계장의 닭들과 사지를 결박당한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들과 양식장에서 들끓는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면 넘어가는 36억 개 라면의 그 분말수프의 맛을 생각한다. 파와 계란의 힘으로, 조금은 순해진 내 라면 국물의 맛을 36억 개의 라면에게 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눈을 팔다가 라면이 끓어 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 책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