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시절 H가 취업 턱을 쏜 날이었다. 그녀는 스물셋, 칼졸업 후 한 작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눈에 띄게 노력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에 부합한 통장 잔고를 보여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연애는 하니?" "그럼! 찬우, 너도 얼른 졸업하고 취직해. 내 나잇대 직장인 여자들이 제일 기피하는 부류의 남자는 못생긴 남자가 아니라 대학생 남자거든."
못생긴 남자란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니면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말문이 턱 막혔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H를 오랫동안 동경했던 건 변함없는 사실이고 몇 년 전, 그녀는 내 두 번의 고백을 정중히 거절하긴 했다. 특유의 넉살 좋은 말투로. 날 그저 친구로 밖에 안 본다는 표정과 함께 마치 다섯 살은 어린 연하남을 대하는 것처럼. 그때가 기억 나서였을까. 젠장, 나 이제 너 안 좋아하는데. 여기 오늘 영업 안 합니다.
H의 위로는 언제나 곡선의 형태였다. 난 네가 남자로 안 보여. 차라리 그렇게 말했다면 깔끔하게 포기했을 텐데. 도리어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내 장점을 세세하게, 그걸 굳이 텍스트로 정성 들여 써주지나 말지. 모호하게 확인 사살하는 그 말간 얼굴의 거부 의사는 이게 결국엔 나를 좋아한다는 뜻 아닌가? 오독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부산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감당할 수 없는 포항 여자는 원래 그렇게 조로한 걸까.
H는 만남과 이별에 있어 별 감흥을 표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말지. 워낙에 별 거 아닌 이별이 횡행하는 시대니까. 큰 키에 어울리는 폭넓은 동작을 섞으며 너풀너풀한 웃음을 지을 때마다 그녀보다 12cm는 큰 내가 조그마해졌다. 그녀의 남자들을 질시하는 감정을 숨기며 속삭였다. 그럼 나한테도 한 번만 기회를 주지. 사랑은 정말 점멸하는 미움 없이는 깊어질 수 없는 걸까, 툴툴대며 4년이 지났다.
나는 뻔하게도 못생긴 직장인 남자가 되었다. 그래도 절반은 이뤘네. H가 가끔 떠오르는 날이면 내 존재를 신분으로 복기하게 된다. 나는 반반의 확률에는 베팅을 걸지 않는 소심한 도박사. 돌다리가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야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사람에게 7 대 3 정도의 등락은 마음을 곧추세우지 못한다. 이제는 사랑이 최우선은 아니니까. 나를 평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납작하게 다질 수도 있다는 걸 몸소 겪었다.
그 사이 세 번의 연애를 완전히 실패했다. 그동안 H와 나는 SNS에서나 서로 좋아요를 교환하는 사이가 되었다. 내 상태는 전혀 좋지 못했는데.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선 일방적인 증여만 남았다. 야, 너 정말 나 없이도 괜찮냐고. 측은한 마음이 들 때면 꼭 술자리를 만들어 밤 열한 시쯤 알딸딸하게 취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을 받으면 두 번은 받지 않았다. 수신음이 연결되면 한 시간은 헛소리를 해댔다.
터무니없이 비관적이나 감수성이 넘치는 나와 지나치게 현실적이나 게으른 그녀는 본인의 일상을 업데이트하며 "언제 내가 부산/서울에 가면 연락할게"라는 거짓말로 마침표를 찍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억울해서 눈물이 마구마구 났다. 우리는 정말 그냥 친구구나. 또 나만 기울어있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애꿎은 휴대전화만 꾹꾹 눌러대다 침대 위로 다이빙하면 바다만 한 평화가 딱 이불 크기만큼 집약되어 나를 덮쳤다.
꿈에서 나는 학교 건물 로비에 서 있는 흐물흐물한 4년 전의 찬우가 절규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윤은 맨날 이쁘고 나는 졸업전시회 때문에 몇 달째 시체처럼 살아. 아빠는 취업정보를 가족 단톡방에 빼곡히 공유하고 내가 빨리 돈을 벌어서 우리 가족이 내년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서 골프를 칠 수 있길 바라. 주정뱅이에 헤비스모커가 된 스물다섯의 내가 요즘 들어 자주 느끼는 건 겨울의 시간은 너무도 황폐하단 거야. 행복은 늘 곁에 있다면서 그걸 잡기가 너무 힘들어. 화창한 긴 햇빛 속에 있는데도."
그맘때 함께 엮여있던 다른 친구에게 우연히 H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을 접했다. 내가 그토록 연모했던 그녀는 어쩌면 내가 그리던 사람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 아니, 처음부터 H는 선망의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가끔 연결되는 통화에 머뭇머뭇 진위를 물어볼까 싶다가도 가만히 스크린 속 주인공을 구경하듯 내버려둔다. 뭘 보여주든 그게 네 진심이겠거니, 내 귀에 닿은 뜬소문을 마스킹테이프로 지웠다.
그런데 왜인지 마음이 옹졸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어지르는 H가 금기로 느껴졌다. 내가 너무나 아끼던, 아끼고 싶었던 사람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니 되려 내가 쓴 감정이 아까워졌다. 단 한 개도 돌려받지 못한 속 좁은 마음이 응고된다. 모조리 융해되어도 상관없다는 진심이 대체 무슨 대수인데. 배신감이 들었다.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네까짓으로 변모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가항력으로 희석되는 헛된 애정 속 낯익은 풍경을 마주한다. 주택가 사이에 엉뚱하게 위치한 파전집, 흉악한 그래피티가 휘갈겨진 세계 맥줏집,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막걸릿집. 그건 사랑의 물리적 장소가 아닌 취기의 형태였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사랑의 애티튜드였다. 찬우, 난 네 음악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 그 말 한마디에 투포리듬을 정직하게 지킨 내 몇몇 녹음물은 H와 흐느적흐느적 춤을 추고 있다.
그때 내 표정은 정직한 상징이었을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너를 기억할 거야.
여기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네가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그게 다야.
그렇게 말했을 테다.
영상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글로, 글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단어로, 그리고 이젠 이모지. 감정도 표현도 간결해진 시대에 나 같이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을 투 머치 토커라 부른다. 나는 그냥 '우리'의 울타리가 남들보다 넓은 사람일 뿐인데. 쉽게 평가절하 되는 날에는 문득 H가 생각난다. 가만히 내 한탄을 듣다 뜬금없는 재치로 응수하는 그녀 덕에 파안대소하게 되었던 때를 기리며 무기력한 허실을 묻는다.
난 여전히 말끝마다 '난 그렇게 생각해'를 붙이고 무언가를 설명할 때도 '어떤'이라는 말을 자주 써.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확신을 못해서, 규정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확신하거나 규정할 수 없어서 그래. 그걸 많은 사람들이 나쁜 쿠션어라고 부른대. 근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누가 말을 칼날처럼 쥐고 사용해. 내 말 듣고 있어? 지금 넌 어디야? 다른 애들이 지껄여대던 그 비루한 소문이 사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