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도 유튜브나 좀 보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낄낄거리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는 게 그만 손바닥으로 코끝을 훑었지 뭐야? 근데 뭔가 따끔한 게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 아니겠지 하고 그냥 넘겼는데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확실하게 느꼈어. 아, 코에 또 뾰루지가 났구나. 으, 스트레스. 세상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 하나 없다지만 그거 다 거짓말이야. 다들 내 코만 보고 있잖아.
내가 겪는 잔병치레라곤 한겨울의 수족냉증밖에 없는데. 난 그만큼 튼튼한 사람인데. 딱 하나 어딘가 고장이 났어. 춥든 덥든 체감온도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하면 유별나게 코만 새빨개진단 말이야. 내 몸의 유일한 체온계라도 되는 양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는 힘껏 붉어지는 얘 때문에 가끔은 술이라도 한잔 거하게 하고 왔느냐는 소리를들어. 여름엔 고주망태, 겨울엔 루돌프가 되는 하이브리드 형 인간이 바로 여기 있다 이 말이야!
근데 이렇게 민감한 내 코를 수시로 빨개지게 만드는 건 온도보단 눈물의 탓일 때가 많아. 뭐가 그렇게 슬프다고 한참을 울고 나면 코만 용암에 빠뜨린 것처럼 새빨갛게 변해있는데 이거 때문에 나는 눈물을 잘 못 숨겨. 일단 눈 쪽에서 뭔가 크흡 하고 솟구치려는 징조만 보여도 코가 먼저 반응하거든. 보통 코는 폐나 간이랑 밀접한 연관이 있다던데. 내 경우엔 아니야. 내 코의 신경은 눈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있잖아. 너무 힘들거나 슬플 때 그냥 다 내려놓고 우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
나도 알지. 아는데 우는 게 그리 예쁜 모습은 아니잖아. "너는 울어도 예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대사잖아. 실제로는 코 나오고 머리는 산발이 돼서 밤에 보면 이 동네 치안율은 내가 다 떨어트리는, 그런 추레한 모습일 뿐이잖아. 우는 건 추해. 보이는 모습도. 그때 그 순간의 내 감정 상태도.
"왜 내 앞에서 우는 일이 없어?"
언젠가 네가 물었을 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어. 속으로만 생각했지. 음, 일단 그런 추한 모습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고 또, 뒤늦게 찾아오는 빨개지는 부끄러움 때문이겠지? 그런데 너는 그런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잘도 우는구나. 힘들 때, 슬플 때, 외로울 때마다 빨개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도 나를 찾는구나. 부럽다. 눈물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그 모습도 부럽지만 나를 유일한 피난처라 믿고 왈칵 쏟아내는 네 믿음이 정말 대견하고 부럽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린다.
잦아들지 않는 들숨과 날숨을 네 뒤통수로만 느끼는 지금, 부둥켜안은 몸을 떼고 긴긴 시간 동안 눈을 맞추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지. 어떻게든 참아야지. 벌써 내 코에도 신호가 오고 있잖아. 나는 숨겨야지. 어떻게든 숨겨야지. 아주 꼭꼭 숨겨서 끅끅 울고 있는 너를 잘 달래줘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