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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27. 2020

홍시

빨갛게 위로하겠다

어젯밤도 유튜브나 좀 보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낄낄거리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는 게 그만 손바닥으로 코끝을 훑었지 뭐야. 근데 뭔가 따끔한 게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 아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확실히 알았어. 아, 코에 또 뾰루지가 났구나. 으, 스트레스. 세상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 하나 없다지만 그거 다 거짓말이야. 저기 봐. 다들 내 코만 보고 있잖아.

 

내가 겪는 잔병치레라곤 한겨울의 수족냉증밖에 없는데. 난 그만큼 튼튼한 사람인데. 딱 한 군데 고장이 났어. 춥든 덥든 체감온도가 급격히 변하면 유별나게 코만 새빨개진단 말이야. 내 몸의 유일한 체온계라도 되는 듯,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아오르는 얘 때문에 가끔은 술이라도 한잔 거하게 하고 왔냐는 소리를 들어. 여름엔 고주망태, 겨울엔 루돌프가 되는 하이브리드 인간이 바로 여기 있다!


근데 이렇게 민감한 내 코를 수시로 빨개지게 만드는 건 온도보단 눈물의 탓일 때가 많아. 뭐가 그렇게 슬프다고 한참을 울고 나면 코만 용암에 빠뜨린 것처럼 검붉게 변해있는데 이 놈 때문에 나는 눈물을 잘 못 숨겨. 일단 눈 쪽에서 뭔가 크흡- 하고 샘솟으려는 징조만 보여도 코가 먼저 반응하거든. 보통 코는 폐나 간이랑 밀접한 연관이 있다던데. 내 경우엔 아니야. 내 코의 신경은 눈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있잖아. 너무 힘들거나 슬플 때 그냥 다 내려놓고 우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


나도 알지, 아는데. 우는 게 그리 멋진 모습은 아니잖아. "너는 울어도 예뻐"는 영화에나 나오는 대사잖아. 실제로는 코 나오고 머리는 산발이 돼서 밤에 보면 이 동네 치안율은 내가 다 떨어트리는 그런 추레한 모습일 뿐이잖아. 나는 늘 눈물을 감춰왔어. 어른들이 그러라고 했어. 실은 나, 미니시리즈 한 편을 봐도 여덟 번은 족히 울 수 있는 찌질인데. 우는 건 추해. 보이는 모습도. 그때 그 순간의 내 감정 상태도.


왜 내 앞에서 우는 일이 없어?


음, 일단 그런 추한 모습을 겉으로 호소하긴 싫고 또 뒤늦게 찾아오는 빨간 수치심 때문이겠지? 그런데 너는 그런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잘도 우는구나. 힘들 때, 슬플 때, 외로울 때마다 붉어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도 나를 찾는구나. 그 살가움이 부럽다. 눈물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그 진솔한 모습도, 나를 유일한 피난처라 믿고 왈칵 쏟아내는 네 대견한 믿음도 참 부럽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린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도 너에게 좋은 위로가 되진 못하겠지. 난 평소처럼 그냥 바보 같은 웃음으로 그 여백을 무마하려 들겠지. 잦아들지 않는 들숨과 날숨을 네 뒤통수로만 느끼는 지금, 부둥켜안은 몸을 떼고 긴긴 시간 함께 부풀어 오르고 싶다하지만 참아야지. 어떻게든 참아야지. 벌써 내 코에도 신호가 오고 있잖아. 나는 숨겨야지. 어떻게든 숨겨야지. 아주 꼭꼭 숨겨서 끅끅 울고 있는 너를 잘 달래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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