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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Sep 26. 2022

학부생 시절 H가 취업 턱을 쏜 날이었다. 그녀는 23살 칼졸업 후 작은 회사에서 한동안 일하다 한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눈에 띄게 노력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녀는 그에 상응한 통장 잔고를 보여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연애는 하니? 내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그럼! 찬우, 너도 졸업하고 얼른 취직해. 내 나잇대 직장인 여자들이 제일 기피하는 부류의 남자는 못생긴 남자가 아니라 대학생 남자거든.


못생긴 남자란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니면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말문이 턱 막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H를 오랫동안 동경하고 있던 건 사실이었고 몇 년 전 그녀는 내 제안을 두 번 거절하긴 했다. 특유의 넉살 좋은 말투로. 날 그저 친구로 밖에 안 본다는 표정과 함께 마치 다섯 살은 어린 연하남을 대하는 것처럼. 그때가 기억 나서였을까. 젠장, 나 이제 너 안 좋아하는데. 허기가 지지 않았는데도 필사적으로 먹었다.


H의 위로는 언제나처럼 곡선의 형태였다. 난 네가 남자로 안 보여. 차라리 그렇게 말했다면 깔끔하게 포기했을 텐데. 도리어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내 장점을 세세하게, 그걸 굳이 텍스트로 정성 들여 써주지나 말지. 모호하게 확인 사살하는 그 말끔하고 잔인한 거부는 이게 결국에 나를 좋아한다는 뜻 아닌가? 오독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남자들 사이에 있는 감당할 수 없는 여자는 원래 그렇게 조로한 걸까.


H는 만남과 이별에 있어서 딱히 감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말지. 워낙에 별 거 아닌 이별이 횡행하는 세상이니까. 큰 키에 어울리는 큰 동작들을 섞으며 너풀너풀한 웃음을 지을 때마다 그녀보다 10cm는 큰 내가 조그마해졌다. 그녀의 남자들을 질시하는 감정을 숨기며 속삭였다. 그럼 나한테도 한 번만 기회를 주지. 사랑은 정말 미움 없이는 깊어질 수 없는 걸까 툴툴대며 4년이 흘렀다.




나는 뻔하게도 못생긴 직장인 남자가 되었다. 그래도 절반은 이루었네. H가 가끔 떠오르는 날이면 내 존재를 신분으로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나는 50대 50의 확률에는 베팅을 걸지 않는 사람. 돌다리가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야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7:3 정도의 등락은 높은 가능성을 뜻하진 않는다. 이제는 사랑이 최우선은 아니니까. 나를 평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나를 납작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체득하고부터다.


그 사이 세 번의 연애를 명백하게 실패했다. 그동안 H와 나는 SNS에서나 서로 좋아요를 교환하는 사이가 되었다. 내 상태는 전혀 좋지 못했는데.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서는 일방적인 증여만 있었다. 아, 너 정말 나 없이도 괜찮냐고.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꼭 저녁 술 약속을 잡고는 밤 11시쯤 알딸딸하게 취해 그녀에게 전화했다. 한 번을 받으면 두 번은 받지 않았다. 수신음이 연결되면 한 시간은 헛소리를 해댔다.


터무니없이 비관적이나 재능이 충만한 나와 지나치게 현실적이나 게으른 그녀는 본인의 일상을 업데이트하며 언제 내가 부산/서울에 가면 연락할게라는 거짓말로 마침표를 찍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억울해서 눈물이 마구마구 났다. 우리는 정말 그냥 친구구나. 또 나만 기울어있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애꿎은 휴대전화만 꾹꾹 눌러대다 침대 위로 다이빙하면 바다만 한 평화가 딱 이불 크기만큼 집약되어 나를 덮쳤다.


꿈에서 나는 학교 건물 로비에 서 있는 흐물흐물한 스물다섯 살의 찬우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윤은 맨날 이쁘고 나는 졸업전시회 때문에 몇 달째 시체처럼 살아. 아빠는 취업정보를 가족 단톡방에 빼곡히 공유하고 내가 빨리 돈을 벌어서 우리 가족이 내년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서 골프를 칠 수 있길 바라. 주정뱅이에 헤비스모커가 된 스물다섯의 내가 요즘 들어 자주 느끼는 건 세월은 너무나도 잔악하다는 거야. 행복은 늘 곁에 있다면서 그걸 잡기가 너무 힘들어. 화창한 긴 햇빛 속에 있는데도."





그맘때 함께 엮여있던 다른 친구에게 우연히 H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을 접했다. 다 듣고 보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H는 어쩌면 내가 그리던 사람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가 보고 겪은 H가 실은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가끔 연결되는 그녀와의 통화에서 머뭇머뭇 진위를 물어볼까 싶다가도 가만히 스크린 속 주인공을 보듯 내버려 뒀다. 뭘 보여주든 그게 네 진심이겠거니, 내 귀에 닿은 소문을 애써 지웠다.


그런데 시간이 더 흐르면서 왜인지 마음이 옹졸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어지르는 H가 뜬소문처럼 금기로 느껴졌다. 내가 너무나 아끼던, 아끼고 싶던 사람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니 되려 내가 쓴 감정이 아까워졌다. 단 한 개도 돌려받지 못한 속 좁은 마음이 응고된다. 모조리 융해되어도 상관없다는 진심이 대체 무슨 대수인데.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네까짓으로 변모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가항력으로 희석되는 애정을 부질없이 바라보며 낯선 풍경을 발견했다. 주택가 사이에 뜬금없이 위치한 파전집, 흉악한 그라피티가 가득한 세계 맥줏집,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막걸릿집. 그건 사랑의 물리적 장소가 아닌 취기의 형태였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사랑의 애티튜드였다. 찬우, 난 네 음악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 그 말 한마디에 투포리듬을 정직하게 지킨 내 몇몇 자랑스러운 음악은 H와 흐느적흐느적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내 표정은 정직한 상징이었을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너를 기억할 거야. 그렇게 말했을 테다.




영상에서 글, 글에서 문단, 문단에서 문장, 문장에서 단어, 단어에서 이모티콘. 감정도 표현도 간결해진 시대에 나 같이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은 피곤한 TMI라고 한다. 나는 그냥 '우리'의 울타리가 남들보다 넓은 사람일 뿐인데. 쉽게 평가절하 되는 날에는 문득 H가 생각난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 뜬금없는 말로 응수하는 그녀 때문에 어안이 벙벙하다가도 박장대소하게 되었던 때를 떠올리며 이 말을 전한다.


내가 서울에서 만난 이성들이 나를 높게 평가하는 항목이 딱 두 개 있어. 내가 내 입으로 자랑하는 특장점은 아니긴 한데. 확신하지 않고 규정하지 않는 것. 나는 여전히 말 앞에 '나는 그렇게 생각해'를 붙이고 무언가를 설명할 때도 '어떤'이라는 말을 자주 써.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확신을 못해서, 규정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확신하고 규정할 수 없어서 그래.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쉽게 믿지 말자.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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